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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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42

기사입력 2020.02.26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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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사

                      이영주

당신이 보여요, 란 말은 아프리카식 안부 인사랍니다. 나는 종잇조각처럼 몸을 접고 고해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촘촘한 구멍에 대고 무슨 인사를 하겠어요? 진짜 인생은 서른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툭 불거진 이마를 제단에 대고 기도의 공식을 외웠습니다. 나는 당신의 뚱뚱한 손가락에서 읽히고 싶은 사람.

아무도 나를 보지 않네요. 신을 선택할 사이도 없이 세상의 끝으로 갑니다. 풍경은 하나의 취향. 철책이 세워진 운동장. 왼쪽 뺨에 남은 손자국. 피 묻은 롤러스케이트. 장면만 남은 시간은 보속 기도* 몇 번이면 사라진답니다. 아, 그런데 당신은 단 한 번도 내게 인사를 하지 않네요.

고해소 쪽문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는 당신. 우주의 비밀은 당신 머리통에서 점점 새까매집니다. 봉인된 글자 안에 나를 두고 나옵니다. 무엇을 고백해야 할까요? 이제부터 나는 아무것도 상관없이 서른입니다.

젊은 예수는 목을 오른쪽으로 꺾고 내려가지 못할 바닥만 쳐다봅니다. 나는 예수의 아랫도리를 천천히 만져 봅니다. 인사합니다. 안녕! 당신이 보여요! 나는 좀 더 친밀한 아프리카 취향입니다. 손등에서 햇빛의 투명한 뼈가 자라납니다.

* 죄로 인한 나쁜 결과를 보상하는 기도

                                                  민음의 시 165 『언니에게』 민음사, 2010

식물원카페2.jpg▲ 사진 김상균
 

방금 내가 머무는 연희문학창작촌 근처 슈퍼에 달걀을 사러 다녀왔습니다. 평소에 쌓여있던 달걀 꾸러미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사재기가 시작된 듯합니다. 확인해보니 이마트에는 사흘 뒤까지 배송 마감이라고 뜨고, 씈도, 쿠팡 로켓프레시도, 마켓컬리도 품절…… 나란히 또는 가까이 있어서 경계가 서로 붙어 있는 게 이웃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당신이 보여요, 란 말은 아프리카식 안부 인사랍니다. 나는 종잇조각처럼 몸을 접고 고해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네요. 신을 선택할 사이도 없이 세상의 끝으로 갑니다. …… 아, 그런데 당신은 단 한 번도 내게 인사를 하지 않네요.//고해소 쪽문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는 당신. ……//젊은 예수는 목을 오른쪽으로 꺾고 내려가지 못할 바닥만 쳐다봅니다. 나는 예수의 아랫도리를 천천히 만져 봅니다. 인사합니다. 안녕! 당신이 보여요! ……”
“하버드대 교수, 올해 전 세계 40~70%가 코로나19 걸릴 것”(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225500102#csidxb8618c313b59)이란 보도를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독감 사망자가 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사실 건강한 사람에겐 독감이 치명적이지 않듯이 코로나19 또한 그런 듯합니다. 지레 공포감에 움츠러드는 것도, 특정 대상에 대해 마녀사냥에 나서는 것도 현명하진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기사에는 “이 코로나19 사태가 지금처럼 계속 심각하다면 사람들은 겨울을 ‘감기와 독감의 계절’이 아닌 ‘감기와 독감과 코로나19의 계절’로 부를 수 있다”는 말이 덧붙여졌습니다. 모두가 ‘코로나19 개인 위생‧행동수칙’을 지키며, 평소의 일상으로 조속히 돌아갈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인사합니다. 안녕! 당신이 보여요!” [데일리인도네시아]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W.A.Mozart의 'Ave Verum Corpus' K.618입니다.

김상균 시인.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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