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여행]발리를 키운 건 팔할이 예술이었다/사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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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발리를 키운 건 팔할이 예술이었다/사공경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20.02.1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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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 
- 자연과 종교와 예술혼의 합작품, 발리 -
                                 
                                                  사공경(한인니문화연구원장)


여행을 가본 지역은 대부분 다시 가지 않는다. 발리는 다르다. 발리를 갔다 와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깊은 향수로 몸살이 나 다시 발리를 찾게 된다. 발리를 태어나게 한 것은 자연과 인간을 만든 신의 손길이지만, 발리를 키운 것은 무엇보다도 푸른 눈을 가진 예술가들의 예술혼과 발리문화를 서구에서도 통용되는 문화로 재창조하기 위해 노력한 우붓의 수까와띠 왕궁이 있었기 때문이다. 

Odalan 축제 (2).jpg▲ 오달란 축제에 제물을 들고 가는 발리여인들. 사누르 마야 호텔에서 [사진: 사공경]
 

# 자연이 만든 발리 

항상 꽃이 지지 않는 나라 인도네시아. 발리에 오면 파아란 하늘 때문일까. 발리 꽃들은 더 특별해 보인다. 그중에서도 ‘발리 꽃’이라고 불리는 깜보자는 꽃잎이 5장으로 되어 있으며 단아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만 향기 때문일까. 고혹적이다. 발리는 천리향이라고도 불리는 깜보자 향기로 가득하다. 또 발리에서 해변에 줄지어 늘어선 야자수 아래에 서면 섬세하고 강렬한 햇빛 때문에 야자수가 수묵화로 보이기도 한다. 

발리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인도양 맑고 푸른 바다나 수평선을 활기차게 잘 연주하면서 불타는 석양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다. 영화 “에마뉘엘 부인”의 무대가 된 후에는 발리 섬에서도 최고의 명소가 된 따나 롯 사원의 석양도 유명하다.

울루와뚜 사원은 해발75km의 절벽위에 세워져 끝에 서면 눈앞이 아찔하다. 이곳에서 께짝 댄스를 감상하면서 울루와뚜의 일몰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살던 세상은 저 멀리에 있는 것 같다. 이처럼 발리의 아름다움은 우리를 무장해제 시키기에 충분하다. 

발리의 인구는 4.2백만 명(2015년 기준)으로 이 중 힌두교도가 85%, 무슬림이 12%, 크리스천 등이 3%이다. 발리의 서쪽에 있는 자바와 동쪽에 있는 롬복은 무슬림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지역인데, 그 두 섬 중간에 위치한 발리가 이슬람의 영향에서 벗어나 힌두교를 유지해온 특별한 이유가 있다. 

지리적인 여건으로 인해 발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외부의 침략을 덜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발리는 북쪽으로 갈수록 표고가 높아지고, 아궁 산 (Gunung Agung, 3,148m) 등이 위치하여 발리의 동서남북 간 이동이 쉽지 않다. 동쪽으로는 산이 바로 해안선까지 연결되어 있고, 서쪽으로는 석회암의 침하로 많은 절벽이 있어 농사를 짓거나 배의 정박이 어렵다고 한다. 

발리는 말루쿠 지역처럼 향신료도 많이 나지 않고, 플로레스처럼 백단향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세력의 관심이 적었다고 볼 수 있다. 네덜란드가 발리에 관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발리의 노동력을 활용하고, 자바와 롬복 동쪽의 이슬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완충지로서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발리인들은 부지런하고 농사 잘 짓기로 유명하다.

# 신이 만든 발리

‘발리(Bali)’는 산스크리트어로 ‘바친다(Wali)’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신에게 제물이나 자신을 받친다는 의미인지, 이 지역을 전체로 신에게 받친다는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발리에 오면 언제나 축제를 만날 수 있다. 집집마다 ‘뺀조르(Penjor)’를 높이 올리고 끄바야 발리를 정성껏 차려 입고 제물인 그봉안(Gebongan)을 높이 이고 사원으로 가는 제례행렬에는 종교적 신성함이 느껴진다. 


Penjor.jpg▲ 뺀조르의 끝이 굽은 것은 겸손한 마음으로 신께 다가가라는 의미이다. [사진: 사공경]
 
뺀조르는 끝이 휘어진 긴 대나무 막대기에 노란빛 코코넛 잎인 자누르(Janur)로 꾸며진 것이다. 이것은 발리 힌두교 신자들이 중요한 의식에서 쓰는 도구이며, 산과 우주 공간을 상징하며, 발리인에게 가장 영적인 산인 구눙 아궁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겸손한 마음으로 신께 헌신하고 조상께 기도하며 비옥한 땅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을 나타낸다. 뺀조르를 만들 때 자신의 염원을 담고 다음 생애에는 좋은 생명체로 태어나기를 기원한다고 한다. 자연물로 만드는 뺀조르는 그 자체가 예술작품이다.
 
발리력은 일 년이 210일이다. 일 년에 한번 조상영혼이 지상을 방문하는 날을 기리는 갈룽안(Galungan) 축제 때에는 대로변 양쪽에도 골목골목 집집마다에다도 뺀조르를 달아서 마치 숲처럼 보이기도 한다. 발리 힌두의 최고 신인 상향위디와사께 보답하는 마음으로 발리는 온통 축제 속에 들어간다. 뺀조르 숲 속을 걸으면 저절로 신이 주신 생명에 감사하며 굽은 뻰조르처럼 머리가 숙여진다. 뺀조르를 만들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굽은 대나무라고 한다. 갈룽안 축제는 보통 10일 동안 열리며 마지막 날 축제가 꾸닝안(Kuningan) 축제이다. 

Odalan 축제 (1).jpg▲ 오달란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 사누르 마야호텔에서 [사진: 사공경]
 
사원이 세워진 날을 기념하는 오달란(Odalan) 축제 또한 발리의 대표적인 축제이다. 오달란 축제만도 6,000번이 열린다. 발리에는 6,000개의 힌두사원인 뿌라(Pura)가 마을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집마다 신당처럼 꾸며 놓은 기도처가 있다.

Odalan 축제.jpg▲ 발리 여인들의 춤. 오달란 축제 사누르 마야 호텔에서 [사진: 사공경]
 
축제 때 할머니들이 우아하게 춤추는 것을 볼 수 있다. 발리 사람들에게 춤은 또 다른 신과 신위에게 바치는 봉헌물이다. 축제를 통해 그들은 신께 더 가까이가고 전통문화를 전승시키면서 과거와 오늘을 살아간다. 또한 축제를 즐기면서 유대감이 생기고 신화적 이야기를 통해 창조적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다. 축제는 예술이며 역사이며, 문화이며, 전통이다. 이는 곧 인문학이다.

Canang Sari, Sesajen.jpg▲ 짜낭 사리 [사진: 사공경]
 
얼마 전 발리 힌두의 총본산인 브사키(Besakih) 사원 가는 길에 제물인 짜낭사리(Canang Sari)을 사고 사진을 찍기 위해 재래시장에 내린 적이 있다. 택시 기사는 차문도 잠그지 않고 꽃과 과자 등 제물을 골랐다. 나는 불안해서 계속 차 쪽을 지켜보았다. 기사는 “힌두교는 곳곳에 신이 있습니다. 외지인이 많은 누사두아 쪽은 몰라도 발리인들만 있는 이곳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는 신의 존재를 가까이 느끼고 삽니다. 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 예술인이 만든 발리

1920년~1930년대 발리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예술가 중 한사람인 멕시코 작가 미겔 코바루비아스(Miguel Covarrubias, 1904-1957)는 「발리 섬」 (1937년)이라는 책에서 “발리만큼 자연과 사람, 신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곳은 없다”고 했다. 그는 문화인류학자이기도 하다.

코바루비아스의 <사누르 해변>이라는 작품에는 코발트색 하늘을 이고 아름다운 인도양 해변에 앉아있는 여인이 있다. 발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벼 이삭을 이고 가는 여인들 뒤에는 우붓의 초록빛 전원이 펼쳐진다. 발리 회화에는 까인빤장(Kain Panjang)만 입고 끔번(Kemben)도 가슴에 두르지 않은 발리 여인들이 논농사를 하거나 자연 속에 있는 그림을 보면 아름답다 못해 찬란하다. 1950년대까지 발리여인들은 끔번을 입지 않았다고 한다. 벼를 추수하는 여인들이나 벼를 이식하는 관상적이면서도 생생한 그림 앞에 서면 사람이 곧 자연이고 자연이 곧 예술임을 알 수가 있다. 

Antonio Blanco.jpg▲ 블랑코 작품 (Museum Pasifika)  [사진: 사공경]
 
예술의 열정으로 여성을 그린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블랑코(Antonio Blanco, 1912-1999)는  1952년에 발리에 왔으며 발리 회화의 대표주자이다. 발리에 문명이 들어오고 관광객이 들어오면서 옷을 입지 않는 문화는 지킬 수 없었지만, 자신의 박물관 내에서 1990년대까지 발리 문화를 지켜왔다. 

발리는 안토니오에게 예술적 독창성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아름다운 풍경, 환상적인 분위기, 널리 퍼진 위대한 예술품을 주었다. 발리 무희와 결혼했으며 발리에 정착한 그는 삶과 일에 대한 꿈을 깨닫기 시작한다. 우붓의 기안야르 지역의 왕, 조꼬르다 그데 아궁 수까와띠(Tjokorda Gde Agung Sukawati)는 안토니오에게 땅을 주었다. 지금 안토니오 박물관 자리이다. 그의 그림은 낭만적이고 몽환적이다. 영원한 여성 화가이며 그에게는 여성이 곧 예술임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 작가 루돌프 보넷(Rudolf Bonnet, 1895–1978)은 1929년 발리에 도착하여 작가 월트 스파이(Walter Spies, 1895–1942)와 우붓의 왕궁과 가깝게 지냈다. 보넷은 우붓에 머물면서 의료 및 교육을 포함한 지역 사회 문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억류 수용소에서 보냈다. 수카르노 대통령이 발리 땀빡시링(Tampaksiring)에 궁전을 세운 후 보넷을 자주 찾아 방문했다. 허나 보넷은 1957년 수카르노 대통령에게 특정한 그림을 팔기를 거부 한 후 발리에서 강제 추방되었다. 그는 15년 후 노인이 되어서 돌아 왔다고 한다. 그는 동성연애자로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발리의 예술적 유산을 보존하는 데 헌신했으며 우붓의 뿌리 루키산(Puri Lukisan) 박물관을 만들었다. 보넷은 1978년 네덜란드에서 죽는다. 1979년 발리의식으로 화장되었고 유골은 그의 친한 친구 아궁 수카와티 (Corkorda Agung Sukawati) 왕자와 함께 바다에 던져졌다.

발리의 전설적인 독일 화가이자 음악가인 월트 스피스는 1925~1940년 우붓에 살았는데 보넷과 함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끄는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스피스는 무용가이기도 했다. 우리가 발리에서 만나는 께짝댄스나 바롱댄스를 재연출한 것도 스피스였다. 그는 뛰어난 예술가였으나 참된 조국이 없는 문화적 방랑아이기도 했다. 그는 독일 국적으로 러시아에서 태어나 성장하지만 1차 세계대전 중 제2의 조국인 러시아에서 억류생활을 하게 된다. 조국인 독일에서도 동성연애자인 그는 적응하지 못한다.우붓의 수까와띠 왕은 유럽의 예술가들을 통해 발리예술을 세계화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Arie Smith.jpg▲ 아리 스미스 작품 [사진: 사공경]
 
아리 스미스(Arie Smith, 1916-2016)는 1938년 네덜란드 동인도 제도에 파견되어 바타비아에 있는 네덜란드 육군 지형 서비스의 석판인으로 일했다. 1942년 초 스미스는 싱가포르, 태국, 버마에서 도로, 교량 및 철도를 건설하는 강제노동수용소에서 3년 반을 보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스미스는 석방되어 새로운 인도네시아 공화국으로 돌아 왔다. 그는 1951년 인도네시아 시민이 되었으며 반둥공대(ITB)에서 그래픽과 리소그래피를 가르쳤다. 미술 상인 짐 판디(Jim Pandy)의 초대에 따라 1956년 발리를 방문하여 사누르 해변에 있는 작은 집에 머물렀다. 그는 밝은 색을 사랑했으며 발리의 풍경에 강렬한 빛을 사용한 색깔을 사용하였다. 발리의 그림 발전에 대한 그의 역할을 인정받아 1992년 발리 주정부로부터 다르마 꾸수마(Darma Kusuma) 상을 받았다.
 
테오 마이어 (1908-1982)도 손꼽히는 작가이다. 스위스 화가로 타히티에서 놓친 열대의 원시적 단순성을 발리 사누르에 정착하고 찾는다. 타이티는 기독교가 들어와 전통문화가 많이 파괴된다. 그는 월터 스파이를 비롯한 발리섬의 다른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었으며 수카르노의 신임을 받게 된다. 

인니 작가 Ida Bagus Nyoman Rai(1915-2000) 등의 작품을 느까 박물관(Neka Art Museum)이나 아궁 라이 박물관(Agung Rai Museum of Art)에서 만날 수 있다. 이들 발리 그림 속에서도 사람과 신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추구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우붓에는 50여 곳이 넘는 갤러리가 몰려 있다. 그림이나 목공 작품을 파는 작은 상점까지 포함하면 마을 전체가 갤러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우붓이 있어서 발리를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붓은 유명한 예술촌이다.

이렇게 발리는 자연, 신, 사람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발리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게 된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써 우리를 구원하는 힘이 되며 우리 삶에 색깔을 부여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다시 발리를 찾게 된다. 발리는 다르다.

참고문헌
가종수 「신들의 섬 발리」 2010
노경래 「한국인이 알아야할 인도네시아」 2017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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