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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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37

기사입력 2020.01.2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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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유서

                                              한우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네 글씨체가 아니구나, 아니라며
너에게 뛰어내리는,
너를 어쩌지 못하고 발만 동동,
눈발이 허리를 비튼다.
네가 쓴 자서自序 한 줄도
언제 한번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내가
어쩌지 못하고 눈발을 맞는다.
눈발이 발목을 꺾는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강이 흐르면서 유서를 쓴다.
나무체였다가 구름체였다가
드문드문 창호지를 바른 얼음 밑으로
너의 서체書體가 드러난다.
살아야겠다, 살아야겠다,
강이 살얼음 물고 유서를 쓴다.

                                            『까마귀의 껍질』 문학세계사, 2010


식물원카페.jpg▲ 사진 김상균
 

일주일 전 서대문구에 있는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했습니다. 밤에는 제법 매서운 공기가 에워싸지만, 낮이면 햇살이 화사하게 내려앉아 1월임에도 집필실 창가의 목련나무에는 꽃망울이 가득 봄을 움트게 하고 있습니다. 뉴스에 따르면 모스크바의 17일 낮 기온이 섭씨 영상 4.3도까지 올라가 모스크바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1880년 이래 1월 17일 기록으론 14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고도 합니다. 벌써 봄이 오는 걸까요? 해빙(解氷)은 ‘얼음이 녹아 풀림’이란 뜻과 함께 ‘서로 대립 중이던 세력 사이의 긴장이 완화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의미도 있듯 주로 긍정적인 의미로 쓰여왔던 말입니다. 하지만 요즘에 와선 극지방과 고산지대의 해빙은 기상 이변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강이 흐르면서 유서를 쓴다./나무체였다가 구름체였다가/드문드문 창호지를 바른 얼음 밑으로/너의 서체書體가 드러난다./살아야겠다, 살아야겠다,/강이 살얼음 물고 유서를 쓴다.”
주말이면 설 명절 연휴입니다. KTX, SRT 표가 매진인 걸 보면서 사회가 급변해도 귀성객이 많다는 사실에 적이 안심되기도 합니다. 고향 잘 다녀오시고, 기쁜 일들로 가득한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Enya의 ‘Only Time’입니다.
  

김상균 시인.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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