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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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36

기사입력 2020.01.1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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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인사

                                                  이현승

아침의 젓가락질은 밤보다 섬세해진다.
밥알을 한 톨씩 집어내다가 결국 뒤통수가 서늘해진다.
밤이 긴 탓, 공기가 차가워진 탓이다.
우리의 안부는 날씨로부터 시작되고

공중 화장실 변기 위에서 누군가의 온기를 느낄 때
엉덩이를 의식하면서 우리는 진심으로 혼자 있고 싶다.
문화시민의 격조로 격언과 낙서들을 바라보면서
불편한 친절은 친절한 불편이라 중얼거린다.

물컵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지는 동안
우리는 빙점을 통과하는 수증기처럼 얼어붙는다.
마침내 완벽하게 혼자가 된다.

첨단공포증의 눈으로 난초잎을 바라보듯
보는 것만으로 찔리는 순간
날카로운 뼈를 얻은 물방울들이
마르고 가는 가지 끝에 표창처럼 꽂힌다.

                                 문학동네시인선 023 『친애하는 사물들』 문학동네, 2012

15일 단풍.jpg▲ 사진 김상균
 

(새해 첫날부터 가족 행사를 겸해서 여행을 다녀오느라 1월 첫 주와 둘째 주 식물원 카페를 쉬었습니다. 찾아주신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북위 60도 지역인 북유럽의 오슬로, 스톡홀름, 헬싱키에서는 겨울이면 10시에 해가 떠서 오후 3시면 해가 지기 때문에 아주 짧은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후딱 넘기게 됩니다. 8시에 호텔에서 아침으로 크루아상을 먹는 여행객의 눈은 창가를 향하게 됩니다. 이 시간 밖은 얼마나 밝아지고 있는지, 오늘 하루는 얼마나 추울지, 어디쯤에서 일몰과 함께 일정을 마감하게 될는지?
“아침의 젓가락질은 밤보다 섬세해진다./밥알을 한 톨씩 집어내다가 결국 뒤통수가 서늘해진다./밤이 긴 탓, 공기가 차가워진 탓이다./우리의 안부는 날씨로부터 시작되고”
작년부터 시베리아, 아마존, 캘리포니아 산불에 연이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형 산불, 곳곳에서의 화산 폭발… “산불이 만든 ‘이산화탄소 홍수’… 호주, 석 달 새 1년 배출량 넘겨(경향신문, 2020.01.13.)” 16년 전 1월 북유럽 여행과 비교해볼 때 이번 여행은 지구 온난화와 기상 이변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의 무절제한 욕구가 원래 시한부인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 모두의 종말을 가속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Vivaldi의 사계 중 겨울 1악장 Allegro non molto


김상균 시인.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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