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무대를 잃어버린 예술, 온델온델(Ondel-O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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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잃어버린 예술, 온델온델(Ondel-Ondel)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20.01.0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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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래

자카르타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Ondel-Ondel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생김새가 다소 우스꽝스럽고 음악 소리는 촌스럽게 들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이 있는 둥 마는 둥 그냥 지나칩니다.

어느 날인가 Ondel-Ondel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귀에 익은 저 음악이 무엇인지, Ondel-Ondel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Google에 들려주고 What’s this song?이라고 해도 나오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니 Betawi 전통 음악인 ‘Sirih Kuning’이라고 하였습니다.

Ondel-Ondel은 예전에는 Barong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Barong은 Austronesian(南島語族: 동남아시아와 마다가스카르, 태평양에 걸쳐 사용되는 언어들의 어족) 지역에서 힌두교 전래 이전부터 발견되며, 재앙이나 악령을 쫓는 수호신 또는 조상신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Barong은 인도네시아 각 지역에 따라 이름과 생김새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그 상징성은 거의 유사합니다. Ondel-Ondel은 중국의 Barongsai와 닮은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Ondel-Ondel은 한국으로 치면 장승인데 움직이는 장승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1970년대 인도네시아 국민가수 Benyamin Sueb가 부른 ‘Ngarak Ondel-Ondel’이 유명하여, 이때부터 자카르타에서는 Barong이 아니라 Ondel-Ondel로 불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Ondel-Ondel이라는 단어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이 큰 인형의 건들건들 거리면서 움직이는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 ‘Gondel-Gondel’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이 큰 인형의 머리에 있는 코코넛 꽃을 나타내는 산스크리스트어 ‘Kundil’에서 유래했다는 설입니다.

Ondel-Ondel은 Betawi 전통 예술입니다. Betawi는 원래는 17세기 이후 Batavia 및 인근 교외에 거주한 원주민 그룹을 칭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부터 다양한 종족 집단이 Batavia로 이주하고 서로 동화되었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원주민’이라 칭하는 것은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19세기 후반 또는 20세기 초반에서야 말레이계, 순다족, 아랍족, 중국계 등이 혼합된 Batavia 거주자들이 자신들을 Betawi로 칭하였다고 합니다.

Ondel-Ondel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7세기 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 상인 William Scot이 1605년 Batavia에 있었던 Abdul Mafakhir 왕자 할례 의식에 ‘Een Reus Raksasa(큰 거인 인형)가 사용되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온델온델1.jpg▲ Hotel des Indes(1829-1971, 현 Duta Merlin Mall)의 호텔 증축 완공 기념 시 Ondel-Ondel이 공연되었습니다. 

Hotel des Indes(1829-1971, 현 Duta Merlin Mall)의 호텔 증축 완공 기념 시 Ondel-Ondel이 공연되었습니다. 당시 <막스 하벨라르>를 지은 Multatuli가 이 호텔명을 Hotel de Provence에서 Hotel des Indes로 바꾸도록 제안했다고 합니다.

네덜란드로부터 독립 후 자카르타 주지사 Ali Sadikin이 Ondel-Ondel을 자카르타 문화의 아이콘으로의 변경을 시도하였습니다. 무서운 모양에서 더 친근하게 보이도록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가미하였습니다. 그 당시까지 Ondel-Ondel은 무언극이었으나, 이때부터 Betawi 음악인 Tanjidor 또는 Gambang Kromong 악단을 동행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인도네시아가 거의 이슬람화 되었음에도 Ondel-Ondel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이슬람은 우상숭배를 금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예술에서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카펫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무함마드 형상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조상신인 Ondel-Ondel이 그 명맥을 유지하면서 자카르타의 마스코트가 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이 현지 문화에 동화되었다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다양성을 쉽게 받아들이는 인도네시아 문화의 특징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온델온델2.jpg▲ Ondel-Ondel 생김새
 

Ondel-Ondel 생김새를 들여다보면, 몸통은 사람이 들어가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도록 대나무 또는 Kapuk 얼개로 되어 있으며, 2m 정도의 키에 몸통은 지름 80cm 정도입니다. 머리에는 섬유질에 코코넛 입의 주맥(主脈, midrib)을 종이 등으로 감싼 화관을 남자 Ondel의 경우 25개, 여자 Ondel의 경우 20개를 씌웁니다. 남녀 Ondel 공히 왕관을 쓰고 있습니다. 남자 Ondel의 얼굴은 붉고 두꺼운 눈썹과 콧수염이 두드러지는 반면, 여자 Ondel의 얼굴은 희고 빛나는 눈동자와 붉은 입술이 특징적입니다. 남자 Ondel은 무늬가 없는 밋밋한 셔츠에 Batawi Batik으로 되어 있는 숄과 벨트를 착용하며, 여자 Ondel은 레이스가 달린 상의에 Betawi Batik의 하의와 숄과 벨트를 착용합니다.

Betawi들은 왜 Batik을 아주 일부만 Ondel-Ondel에 사용할까요? Ondel-Ondel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만들어진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일까요? 혹은 Betawi들은 Batik을 완전하게 입힐 정도로 Ondel-Ondel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것은 아닐까요?  

온델온델3.jpg▲ Ondel-Ondel로 생계를 이어가는 동네가 중부 자카르타에 있는 Kramat Pulo
 

Ondel-Ondel로 생계를 이어가는 동네가 중부 자카르타에 있는 Kramat Pulo입니다. 이 동네는 Ondel-Ondel을 만들어 악기와 스피커를 단 수레(Gerobak Musik)와 함께 대여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Ondel-Ondel은 <라마야나> 또는 <마하바라타> 같은 서사나 스토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조상신이 말을 건네는 것이 이상할 수 있기 때문에 Ondel-Ondel에는 스토리가 없는 것으로 이해는 됩니다. 스토리가 없으니, 누구나 맘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길거리 공연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Ondel-Ondel 공연에는 Tanjidor와  Gambang Kromong 등의 합주단이 함께합니다. Tanjidor는 19세기 이후 네덜란드 군대 병영에서 병사들끼리 연주하는 것으로부터 유래한 Betawi 음악으로 알려져 있으며, 요즘은 자카르타 주정부 행사나 화교 공동체의 Cap Go Meh(정월 대보름)에 거리 축하 공연 등에 사용됩니다. 

Gambang Kromong은 Gamelan 형태의 Betawi 전통 오케스트라입니다. Gambang Kromong은 Gambang Kayu(Ironwood로 만든 음판이 있는 실로폰)와 Kromong(5개 청동 Gong으로 되어 있는 Bonang)을 합한 것입니다. 전통 Gamelan에는 없는 5음계인 중국의 현악기도 사용되며, 주로 화교 공동체에서 공연되어 왔습니다. 

Gambang Kromong의 대표곡은 Sirih Kuning과 Jali-Jali입니다. 이 2곡 모두 자카르타의 전통음악입니다. 이 노래가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카르타에 오래 살았다면 이미 귀에 익숙한 음악일 것입니다.

Ondel-Ondel의 길거리 공연을 보면 이게 예술인지, 구걸인지 헷갈립니다. 그 경계가 아주 모호합니다. 그래서 거리의 악사(Pengamen)에게 2,000 루피아를 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게 됩니다. 

국가 초청 공연자인 Hasan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Ondel-Ondel 공연 예술가인 부모님으로부터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7살 때 Full Moon Duta Ambassador 공연단의 단장을 맡았다고 합니다. 한때는 잘 나갔던 예술가였던 셈이죠. 그러나 거리에 차량과 행인이 점점 많아져 공연하기가 힘들게 되고, 차량과 반대 방향으로 가지만 차량 흐름을 방해한다고 가끔 손가락질도 받는다고 합니다. 2.5시간 공연에 2,500,000 루피아를 받아 공연에 참여한 총 13명이 나눠 갖고 숙박비를 제외하면 Hasan의 손에는 100,000 루피아가 남는다고 합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Ondel-Ondel 공연에 열의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온델온델4.jpg▲ 버스킹을 위해 Ondel-Ondel을 이용하는 걸인
 

그와 반면, 버스킹을 위해 Ondel-Ondel을 이용하는 걸인의 경우인데, 이들은 공연 장비를 대여하는 스튜디오(Sanggar)에 임대료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행인들로부터 받을 돈을 공연자 머릿수 당 많이 배분하기 위해서는 공연 참가자 수를 최대한 줄이며, 심지어 12살 이하의 어린이로 하여금 플라스틱 통이나 깡통을 들게 하고(사진: www.gulftoday.ae), 악기들은 Gerobak Musik으로 대체하고, 남녀 한 쌍이 아닌 하나의 Ondel만 사용하기도 합니다. 비가 오면 완전 공치는 날이 되며, 가끔은 Ondel을 메고 하수구나 도랑에 처박히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예술가와 걸인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공연자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든 조상이 그들의 배를 채우게 하고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Ondel-Ondel 공연으로 버스킹을 하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것 같습니다. Pengamen들에게 기꺼이 돈을 건네 주는 사람들은 그들이 Betawi 문화를 보전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질서나 교통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어디서든 공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반대쪽의 사람들은 그들이 Ondel-Ondel 문화에 대해 이해하지도 못하고 단지 구걸 하는 것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거리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카르타 주정부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것을 금하고, Betawi 전통 복장을 하고 공연 장비를 제대로 갖춘 경우에만 특정 시간대에 공연하여 관광객을 유인할 계획이라는 원칙적인 이야기만 몇 년째 되풀이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Ondel-Ondel의 미래를 아주 밝게 봅니다. 소득이 늘어날수록 문화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기 마련이며, 여기에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와 Ondel-Ondel의 공연 방식에도 획기적인 진보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로봇이 Gambang Kromong에 맞추어 멋들어지게 춤을 출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Ondel-Ondel의 이미지를 이용한 예술 작품이 많이 나오고 아이디어 상품도 개발될 것으로 보여 상업적으로도 괜찮은 아이템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Ondel-Ondel은 지금은 무대를 잃어버리고 헤매고 있지만, 가까운 장래에는 화려한 아이콘으로 변모하여 대중의 사랑을 받는 무대로 복귀할 것입니다. <끝>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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