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양칠성, 친일 논란 종식할 자료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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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독립영웅 양칠성, 친일 논란 종식할 자료 나와

가룻 군수, 양칠성 도로 명명 의지 강하게 밝혀
기사입력 2019.12.2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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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가룻 양칠성 묘비.jpg▲ 가룻 국립묘지에 있는 양칠성 묘의 묘비. 한글 이름이 선명하다. [사진: 한인100년사 편찬위원회]

인도네시아에서 독립영웅으로 주목을 받는 인물인 한국계 인도네시아인 꼬마루딘 양칠성(이하 양칠성)이 네덜란드 군인들에게 처형될 당시 인도네시아 국기를 상징하는 흰색 수의와 적색 숄을 목에 두르고 총살됐다는 기록이 확인됐다고, 한인회 소속 한인 100년사 편찬위원회(박재한 편찬위원장)가 밝혔다. 

인도네시아 역사연구자 모임인 ‘히스토리카 인도네시아’(압둘 바시드 회장. 이하 히스토리카)는 네덜란드 국가기록원 자료를 인용해, 양칠성이 1949년 5월 21일 처형을 앞두고 인도네시아 국기를 상징하는 복장을 요청해서 흰색 수의와 적색 숄을 목에 두르고 가룻 군내 찌마눅 강변에서 총살됐다고 확인했다. 

한편 히스토리카 측은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생존자의 증언을 인용해 그가 머르데카(Merdeka, 독립)를 외쳤다고 주장했지만, 이 내용은 이번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앞서 일본인 역사학자 우쓰미 아이꼬는 1980년에 출판된 <적도 아래 조선인 반란>이라는 저서에서, 양칠성이 1949년 8월 10일 네덜란드 군에 처형되기 직전 함께 처형된 일본인 동료들이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고 썼고, 그 동안 이 내용이 학계와 언론에 인용되면서 정설처럼 확산됐다. 

양칠성 사망 날짜와 총살 직전 정황 등이 히스토리카 측과 우쓰미 선생 연구 결과가 달라서 앞으로도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7일 가룻 군수 면담.jpg▲ 루디 구나완 가룻 군수와 히스토리카 연구원들이 12월 23일 가룻 군청에서 양칠성 관련 연구 내용을 한인100년사 편찬위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 한인100년사 편찬위원회]
 
히스토리카와 가룻군청은 지난 23일 한인사 편찬위원들을 초청해 그동안 진행된 연구성과를 전하고, 앞서 무산된 ‘양칠성 도로 만들기’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루디 구나완 가룻 군수는 이날 “2020년 8월 17일 전에 반드시 양칠성 이름을 딴 도로 명명식을 거행하겠다”라고 말했다.

앞서 가룻군청과 히스토리카는 인도네시아 영웅의 날인 지난 11월 10일 관내 도로 중 한 곳에 양칠성도로라는 이름을 명명하고자 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1919년생인 양칠성은 일본군의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1942년 인도네시아에 왔고, 1945년 일본이 패전한 뒤에는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합류해 '폭탄 전문가'로서 네덜란드군에 대항했다.

350년간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받은 인도네시아는 일본이 1942년 점령했다가 1945년 물러가자, 재점령하려는 네덜란드와 4년간 독립투쟁을 벌였다.

전북 완주 출신의 양칠성은 '야나가와 시치세이'라는 일본 이름과 아랍어에서 유래된 '달'이라는 의미의 '꼬마루딘'이라는 현지 이름을 썼다. 이름이 세 개였던 셈이다.

양칠성은 외국인 독립영웅으로 추서돼 유해가 1975년 가룻 영웅묘지로 이장됐고, 1995년 8월에서야 묘비의 일본명이 한글명으로 바뀌었다.

히스토리카는 2018년에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등장한 한국인 전사의 역할’이란 제목의 세미나에서 일본군의 연합군 포로감시원 출신 양칠성, 국재만, 정수호 등이 독립군부대 빵에란 빠빡 부대원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처형당했다고 알리고, 이들 중 폭파전문가로 주목 받은 양칠성의 이름을 붙인 도로를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히스토리카는 인도네시아 사학자, 역사교사, 언론인 등으로 구성됐으며, 저평가된 독립투사를 발굴하고 후손들의 생계 지원 활동도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히스토리카는 인도네시아 독립이 인도네시아인의 바람과 치열한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며, 인도네시아인이 인도네시아 역사의 주체임을 알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루디 구나완 군수와 히스토리카 연구원 다당은 '빵에란 빠빡 부대(Pasukan Pangeran Papak)'의 후손으로 조상의 역할을 조명하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가룻군에는 현재 이름을 부여해야 하는 새 도로가 13개 있고, 시내 중심도로에 국가영웅의 이름을 붙이는 인도네시아 도로이름 부여 방식에 따라 수카르노와 하타 같은 국가영웅과 함께 독립투사인 양칠성의 이름도 후보에 올라 있다. 

가룻군은 수카르노와 하타 등 잘 알려진 인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양칠성과 이 지역에서 활동한 무장독립단체 빵에란 빠빡 부대를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내년 2월 16일 ‘가룻의 날’에 즈음해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 자리에 한국 측 인사들도 관심을 갖고 참석해 주길 기대했다. 

가룻 지방정부는 자카르타에서 차로 4시간 가량 걸리는 지역으로 서부자바주에 속하며 한국계 신발제조업체 창신(PT)을 비롯해 한국으로부터 10억 달러 가량의 투자를 유치했고, 최근엔 전남 담양군과 경제교류협정을 맺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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