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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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의 식물원 카페 29

기사입력 2019.11.12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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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행열차 한 량, 어머니

정진경

지난 가을
열매를 따낸 사과나무 행렬은
철저히 탈모 중이다

사과를 따낸 숫자만큼
어미의 욕망은 비례하고,
여자의 욕망은
반비례한다는 것을
나무는 저렇게 비틀어져
온몸으로 내게 말한다

낙숫물이 들이치는 교정에서
어머니의 몸이 휘어진다
월사금을 내지 않아 벌을 서는
나를 보면서 속앓이를 하던 꽃판,
울음통을 삼키며 하늘을 멍하게 보던
어머니는 낮달이다

어머니 휜 등골 안에서 하얗게 핀 산고대

자식은 어미를 가두는 창살 없는 감옥

해 뜨고 저물어도
고장 난 완행열차 한 량, 어머니
사과가 떨어진 꼭지에 걸려
정차하고 있다

                                 오후시선 02 『사이버 페미니스트』 역락, 2019


13일 식물원카페.jpg▲ 金允鑽 作 ‘靑春-이른 아침의 그 숲길에서’ 296×208cm 한지에 水墨積痕, 金箔 2005 사진 김상균
 

낙엽이 낮은 곳으로 향하는 건 쇠락과 중력의 탓이겠지만 우리는 낙엽으로부터 푸르른 기억을 더듬어보게 되고, 지금 여기 내 사랑의 깊이를 가늠해보기도 하며, 떠난 후 남겨질 것을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사과를 따낸 숫자만큼/어미의 욕망은 비례하고,/여자의 욕망은/반비례한다는 것을/나무는 저렇게 비틀어져/온몸으로 내게 말한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비어 가는 가지와 쌓이는 낙엽을 보며 당신은 무엇을 떠올리시나요?

모든 생명에게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나얼의 ‘바람 기억’입니다.

김상균 시인.jpg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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