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은숙] ‘삶이라는 끝없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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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삶이라는 끝없는 여행’

김은숙의 깡통의 수다 27
기사입력 2019.08.2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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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은숙 작가 

새벽공기가 차다. 유독 어두운 일출 전 하늘의 별들은 따뜻하게 반짝이지만 마음은 고뇌의 밭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여름 방학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아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됨과 동시에 나에게는 줄기찬 여행이 시작되었다. 먼저 지인의 아들이 미국 대학 기숙사에서 짐을 옮겨야 해서 지인과 함께 미국에 다녀왔다. 캘리포니아 UC 버클리 대학에 1년 동안 다닌 지인의 아들은 내게는 조카와 같은 아이이다. UC 버클리 대학 기숙사의 짐을 빼는 광경은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은 광경이었다. 하긴 학교가 아름다우니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아름다웠다. 아니다 사람들이 아름다우니 학교도 아름다웠다가 맞는 것 같다.

아이들이 본격적인 방학을 할 즈음 한국에도 다녀왔다. 나의 일정인 한글학교 교사연수도 했고 아이들의 일정인 아이돌 춤 교습도 한 달 간 시켰다. 춤 배우겠다고 한국을 따라 나선 막내딸을 서울까지 데리고 다니며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를 앞마당 삼아 놀았다.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옷값도 싸고 먹을거리도 싸고 이제까지 왜 몰랐는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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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싱가포르 아이들에게도 갔다 왔다. 겨울에 필요한 옷들을 한국 갔을 때 역 시즌 세일 상품이라 사왔는데 이탈리아로 떠나는 큰아들에게 주고 와야 했다. 싱가포르에서 머무는 단 하루의 시간에 아이들과 북 세일이라고 하는 행사에 갔다. 가방에 책을 가득 담아 20불을 지불했는데 세상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에 내 인생이 로또 맞은 느낌이었다.   

여름방학의 마지막 여행은 살라띠가라는 곳에 집을 얻은 것이다. 족자에서 동쪽으로 두 시간 거리의 위치에 있고 MCS라는 기독교계 국제학교가 있는 곳에 새 둥지를 틀었다. 전에 다니던 막둥이들 학교에 문제가 심각해져, 어쩔 수 없이 아빠와 헤어지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나는 네 집 살림을 하게 됐다. 그렇게 집을 얻으려고 왔다 갔다 했고 아이들 학교를 옮겨주며 함께 며칠을 살라띠가에서 보내고 족자에 돌아오고 나니 3개월이 나도 모르게 가버렸다. 시간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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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글을 못 쓴 핑계를 대는 것 같지만,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이다. 한 가족이 네 살림으로 갈라진 게 먹먹해서 일주일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돈도 돈이지만 마음을 어디로 두고 살아야 할지 정말 정리가 안 된다. 더욱이 6개월 후면 아이들 아빠를 족자에 혼자 살게 하고, 살라띠가에서 본격적으로 지내며 족자로 왔다 갔다 해야 한다. 내가 다니는 족자에 있는 대학이 마지막 학기라 친정엄마에게 6개월만 아이들을 봐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런데 공부도 제대로 안될 것 같다. 가슴에서 수세미 소리가 또 나기 시작한다. 나는 마음이 아프면 가슴에서 수세미 소리가 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삶이라는 여행을 한다. 태어난 생명, 그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삶이라는 여행은 이미 시작되는 것이다. 각자 여행의 폭과 길이가 다를 수는 있지만 한번 시작한 삶의 여행은 끝나는 순간까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이라는 여행은 반을 넘겼다. 아니 어쩌면 인생을 80으로 생의 여행의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반도 훌쩍 넘긴 것이다. 뒤돌아 볼 때 잘한 여행이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다만 가족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름 열심히 여행을 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자식에게 큰 공부 월등한 공부 못 시킨 게 마음 아프기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으로써 함께 하는 삶을 살아주려고 했다는 것이 이번 생의 여행에서 가장 잘한 일 같다. 다시 태어나 또 다른 삶을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고 해도 쉽고, 귀하고, 부유한 여행보다 어렵지만 가족과 이웃들과 천천히 아름답게 살아가는 여행을 하고 싶다. 

‘삶’ 충분히 아름다운 여행이다. 내가 고통 속에 있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삶이라는 여행에서 만난 세상은 참 아름다웠다. 편안한 하루가 그 일상이 영원히 흐르는 여행이면 좋겠지만 삶의 굴곡이 없는 여행은 진정한 가치 또한 모를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아팠어도 내 삶의 여행은 충분히 행복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살 수 있었던 한 순간 한 순간들이 모여 삶의 의미를 아름답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끝없는 여행 속에 아픔만 있다면 참 가여울 것 같다. 하지만 하늘이 정말 그렇게 두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정직한 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삶이라는 여행에서 보답을 받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속는 셈 치고 하루를 달려보면 언젠가 되돌아보았을 때 “그래 그때 힘들었어도 묵묵히 걸어오길 잘했구나!”라고 할 때가 있을 것 같다. 하루하루 소소한 여행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가까운 이웃나라 여행이던 먼 나라 여행이던 우리에게 소중한 무엇인가를 알려줄 것이다. 특히 삶이라는 여행은 우리에게 더한 것을 알려주지 않을까? [데일리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 족자에서 사는 김은숙 작가가 <깡통의 수다>를 데일리인도네시아에 연재합니다. 문득 자신의 삶이 깡통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깡통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 지 스스로 궁금해졌다고 합니다. 김 작가는 족자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을 내조하고 사남매를 키우면서 사나따다르마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고 수필집 두 권을 낸 열혈주부 작가입니다. 현재 사나따다르마대학교 인도네시아문학과에 재학 중이며, 족자 한글학교 교장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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