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오늘의 시인총서 1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
▲ 김수영 시인[이미지: 김수영문학관 홈페이지]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시인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꿈을 추구하지만 시가 되는 순간 그것은 가능한 현실로 바뀐다. 독자는 그 시로부터 새로운 현실을 보고,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새로움을 보여주는 시의 언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운 우리말이며 이러한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시인의 임무라고 김수영은 주장했다.”(김수영 문학관의 ‘김수영과 작품세계’ 중에서)
김수영 시인은 ‘어느날 古宮을 나오면서’를 1965년에 발표했습니다. 그 후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그가 절망하고 분노했던 우리나라의 물질적 궁핍과 문화적 후진성, 독재정치 등을 우리는 극복해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왜 여전히 반칙(反則)에 대해 “정정당당하게” 맞서지 못한 채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고,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비겁한 것이라고 알”면서도 “이렇게 옹졸하게” 만만해 보이는 상대에게나 분풀이하듯 까탈스럽게 구는 걸까요?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광복 이후 지금까지도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적,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청산(淸算)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민족 공동체의 차원에서 볼 때 정칙(正則)을 벗어난 이익 추가가 용인되고, 또 반칙이 편의적으로 정당화되는 것만큼 더 큰 해악(害惡)은 없을 것입니다.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 문제가 제대로 청산이 안 되면 그 폐해가 미래 세대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에 붙들려 서로에 대한 미래 지향적인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됩니다. 요즘 일본 정부의 적반하장을 보면서 이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다는 걸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모든 생명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어반 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입니다.(원곡의 ‘널 사랑하지 않아’는 반어법입니다만, 가사를 직설적으로 보면 일본 극우 정치지도자의 속내가 읽히는 듯합니다.)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정년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