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칼럼] 인도네시아의 경제적인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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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도네시아의 경제적인 독립

기사입력 2019.07.04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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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성석 / UPH 경영학부 교수
 
1949년 12월 인도네시아공화국 정부는 16개로 구성된 연방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일원으로써 인도네시아공화국에 대한 통치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정치적 독립은 어떤 의미에서 경제적 독립의 완성이 아닌 시작이었습니다. 긴 네덜란드의 식민 통지가 인도네시아 경제에 남겨 것들은 그만큼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독립을 이룬 인도네시아인들은 오랜 시간에 그런 과거 식민지 경제 체제를 벗어나 그들이 원하였던 경제적 독립을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독립 후 1957년까지 ‘의회 민주주의’ 시기의 인도네시아 정부의 정책들과 ‘교도 민주주의’ 초기에 이루어진 급진적으로 이루어진 외국 민간 자본에 대한 몰수 과정까지의 인도네시아인들이 인도네시아 경제의 주체로서 가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I. 독립 초기의 경제적 상황
 
1942년 네덜란드와의 독립전쟁 이전 농업 부문을 제외한 산업은 19%만이 인도네시아인 소유였고 52%는 네덜란드인의 소유였습니다. 실질적인 인도네시아공화국의 통치가 시작된 2년 후인 1952년에도 여전히 50%의 소비재 수입이 5개의 네덜란드 민간 회사에 의해 주도되었고, 60%의 수출이 8개의 외국 회사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중 4개는 네덜란드 회사였습니다. 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는 은행들은 네델란드 기업의 통제 아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7개의 외국계 은행이 민간은행을 주도하였는데 그중 3개는 네덜란드인의 소유였습니다 (Glassburner, 2007). 1953년에 이르면 수마트라와 자바의 농업과 관련된 토지에 대한 70%까지 외국인 소유가 다시 증가하게 됩니다 (Robison, 2008)
 
어떻게 정치적인 독립을 하였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는 인도네시아의 독립 과정에서 이루어진 네덜란드 정부와의 협상에서 그 답의 일부를 찾을 수 있습니다. 1949년 가을 독립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인도네시아 지도자들은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의 독립에 대한 원탁회의를 하고, 연방 인도네시아 정부의 하나인 인도네시아 공화국으로서 독립하는 것에 합의하게 됩니다. 인도네시아가 독립을 하지만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여전히 인도네시아 연방이 자신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곳으로 남아 있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한 네덜란드인들의 모습은 원탁회의 결과인 합의문에 잘 드러납니다.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몇 가지를 보자면 네덜란드 정부 하에서 합법적으로 주어진 모든 권리와 허가에 대해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인정하는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권리와 허가에 대해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공공의 이익에 반할 때에만 권리와 허가를 가진 자와의 우호적인 협상을 통해서 해결하도록 명시되었습니다. 만일 상호 합의에 결과를 도출할 수 없을 때에는 법적인 절차에 따라 단지 공공의 이익에 반할 때만 국유화, 청산 등을 행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Kahin, 1980). 이런 독립 과정에서의 약속은 이후에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이후에도 식민지 시기에 이루어진 극단적인 외국 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형태의 지속성을 보장해 준 것입니다.
 
II. 경제적 체제의 변화를 위한 여러가지 시도들 (1950-1997)
 
이런 상황은 당시 중도적인 정치 지도자라 하더라도 경제적인 면에서 인도네시아의 독립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느끼게 하였습니다. 당연하게 그들은 변화를 추구하게 되었고 성공적인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민족주의적 성격과 사회주의적 성격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주의 성격이 강했던 많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그들이 당면한 문제는 외자 주도와 민간 주도는 인도네시아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위해 해소되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독립운동 시기에 족자카르타와 게릴라 전쟁을 치루면서 형성된 이상주의가 네덜란드와 협의되어 이루어진 자카르타 정부에서 실현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네덜란드가 만들어 놓은 식민 경제 시스템에서 이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정신과 일치하는 그들만의 자유로운 체제를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상은 네덜란드에서 교육받은 사회주의적 성격이 강한 건전한 사회주의자들에 의해서 시도되어집니다. 당시 그들에게 있어서 사회주의란 외국 자본의 ‘인도네시아화’와 협동 노동을 강조하는 ‘전체주의’적 경제구조를 의미했습니다 (Mackie, 2007). 첫 4번의 내각에서 경제학자로서 훈련받은 인물은 무하마드 하따와 수미트로 조요하디꾸수모 둘이었지만 경제적인 이념은 샤프루딘 쁘라위라느가라, 주안다 까르따위자야 , 유숩 위비소노 등 몇몇에 의해 주도됩니다. 그중 사프루딘은 누구보다도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며 필요한 협상을 이끌어 내려 했던 반면, 수미트로는 그런 의도가 가장 적었던 자로 가장 큰 변화를 원하는 자로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경제 정책을 이끌었던 그들은 명목상 사회주의자였지만 실용주의자였고 체제를 만드는 일을 이끌어 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내각도 경제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실행하지는 않았습니다. 4차 내각이었던 윌로포 내각 이후에는 어떤 내각에서도 경제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동의와 점진적인 시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57년의 교도 민주주의로의 정치적인 변혁이 이루어지기까지 7번의 내각이 바뀌면서 수많은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1953년 네덜란드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던 민간은행을 인수하여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자는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총장이 아닌 재무부 장관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인도네시아 은행은 정부 정책을 실행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부의 경제 정책을 종속된 통화 정책을 통해 실행하는 기관으로서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의 성립은 이후 경제 정책의 변화에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인도네시아화’를 위해 1950년대에 판매가 쉬운 상품에 대한 수입허가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만 주어지는 ‘장벽 정책’이 추진되었습니다. 이 정책은 한국 주식 시장의 ‘검은 머리 한국인’처럼 중국인들이 인도네시아인들을 바지 사장(Ali-Baba)으로 내세우는 등으로 인해 문제점을 노출하였습니다(Feith, 1962). 그러나 인도네시아인 기업인들에 큰 희망이 되었습니다. 또한 정부는 은행을 통해 수출입과 관련하여 인도네시아 기업인들에게 대출을 더 유리하게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1956년에 강력하게 추진된 이 정책은 개인 기업이 아닌 공기업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되는 등 별 성과를 이루어 내지는 못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는 인도네시아 중소기업 양성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사용하였지만 이런 정책은 전체 경제 구조에 있어서 그들이 원하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네덜란드와 중국인에 의해 주도되는 체제에 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였고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정도에 그치게 됩니다.
 
7번에 걸친 내각의 변화에도 지속적으로 내각에 참여했던 마슈미, PNI(국민당), PSI(사회당)은 강한 반네덜란드와 반자본주의라는 국민 정서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내지 못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식민 지배체제의 이익을 여전히 누리고 있던 네덜란드인들의 경제적 이익을 없애기 위한 지속적이고 명백한 정책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사회주의적인 방향으로의 급진적인 전환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민족주의자이면서 사회주의자들인 이 시기의 지도자들은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였을까? 부분적으로 당시 인도네시아인들에게 네덜란드 소유 회사를 국유화할 자본이 부족하였고 운영할 만한 인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실제적으로 취한 정책들은 네덜란드라는 외국 자본과 함께 인도네시아 산업과 상업을 이끌 수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Glassburner, 2007)
 
III. 급격한 민간 외국 자본에 대한 몰수 (1957-1958)
 
경제 정책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국내의 여러 정치적 상황 변화는 정당들의 정치적인 기반을 점점 약화시키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수까르노의 정치적 부상과 하따와의 대립, 수마트라에서의 반란, 동부 인도네시아 지역에서의 반란 등이 원인이 되어 계엄을 선포하고, 1957년 3월에 교도 민주주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1957년 12월에 이르러 특별한 사전 계획 없이 군부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서 수까르노가 제시한 국가자본주의와 경제적 민족주의의 이념 아래 네덜란드 민간 자산에 대한 몰수가 갑자기 시행되었습니다 (Robinson, 2008). 1년 후에 국회에 의해 이러한 네덜란드 민간 자본에 대한 몰수는 추인되었습니다.

외국 민간 자본에 대한 몰수의 결과로 플랜테이션 생산의 90%, 무역의 60%, 246개의 공장, 수많은 광산, 은행, 해운과 다양한 서비스 산업의 소유권이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이전되었습니다(Robinson, 2008). 몰수된 해외 민간 자본들은 주로 국가의 관리하에 놓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1950년대 동안 인도네시아 민간 기업인들은 국가 산업 경제의 기초를 세우는데 충분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또한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군부가 민간에 분할하기보다는 공기업 형태로 두기를 더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몰수는 외국 민간 자본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고 인도네시아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해외 민간 투자 자본에 대한 국유화는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외국 민간 투자가 인도네시아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해에 대한 단절을 의미합니다(Makie, 2007).

동시에 이는 인도네시아 경제 정책의 사회주의적 접근, 정부 간섭의 심화를 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모든 외국 민간 자본에 대한 철저한 단절이 아니라, 착취적인 외국 자본의 성격을 좀 더 유순한 자본으로 성격을 바꾼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소유권의 이전으로만 평가하여 본다면 독립 초기 인도네시아 경제는 오랜 식민지 경제체제인 외국 민간 자본 중심이었습니다. 실패를 거듭하고 경제 주도층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하였지만 ‘의회 민주주의’ 시기의 정책들은 인도네시아인들의 경제적 입지를 세워주는 역할을 일정 정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못하였던 인도네시아 정부는 몰수라는 급진적인 방식을 통해 소유권을 가져옵니다. 인도네시아인들이 소유권을 갖게 된 것을 형식적인 경제적 독립이라고 본다면 이때에 이르러서야 경제적 독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외국 민간 자본에 대한 일방적인 몰수와 국유화는 비록 외국 자본과의 단절이 아니었지만 이는 이후 인도네시아 경제 체제와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데일리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은행박물관.jpg
▲ < 바타비아의 자바은행, 현재 중앙은행 박물관 (구글이미지) >
 

참고도서
Feith, H. (1975). The decline of constitutional democracy in Indonesia. Cornell University Press.
Glassbuner, B., (2007) Economic policy making in Indonesia, 1950-1957, Eds by Glassbuner, B., in The
Economy of Indonesia: Selected Readings, Equinox Publishing. 70-98.
Kahin, G. M. (1995). Nasionalisme dan revolusi di Indonesia. UNS Press.
Mackie, J.A.C., (2007) The Indonesian economy, 1950-1963, Eds by Glassbuner, B., in The Economy of
Indonesia: Selected Readings, Equinox Publishing. 16-69.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동시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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