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에세이]코코넛 나무를 다시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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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코코넛 나무를 다시 바라보며

인문창작클럽 연재
기사입력 2019.06.2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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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나무를 다시 바라보며

글: 노경래

달리는 차 창 밖으로 코코넛 나무가 흐르고 있다. 등골이 오싹인다. 인도네시아에 처음 둥지를 틀 즈음에 너, 코코넛 나무를 볼 때는 내가 이국 땅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네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거든. 너는 그 동안 그 자리에 있어 왔는데… 세상에서 무심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바로 나였구나.

나의 무관심에도 한결 같이 내 곁에 있어 준 말 못하는 너를 대신해 너의 이야기를 전한다면 그 미안함이 조금은 줄어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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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이라는 너의 이름은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에도 나오고, <천일야화>의 ‘신밧드의 모험’에서도 등장한다. 1280년경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당시 아랍인들이 jawz hindī(Indian nut)라고 불리던 네가 수마트라에 있다고 기술하였다.

오늘날의 coconut이라는 단어는 14세기 서양에서 처음 등장한다. 대항해시대 서양의 항해자들은 너에게 굉장히 흉측한 이름을 붙였다. 그들은 너의 열매의 표면에 있는 세 개의 검은 반점이 고블린(goblin)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고블린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어로 ‘coco’인데, 그들은 여기에 nut을 더해 coconut이라 불렀다.

인도네시아어로 kelapa라 함은 일반적으로 코코넛 열매(buah kelapa)를 말하고, 코코넛 나무는 pohon kelapa라고 한다.  

너의 원산지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지만 대체적으로 생물지리학적 지역으로 동남아와 호주를 포함하는 말레이가 그 원산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너는 아프리카 일부 지역을 제외한 북위 25도와 남위 25도 사이의 열대에서 주로 자란다. 이들 지역은 모래사장이 많고, 지하수가 잘 공급되며, 배수가 잘되고, 높은 온도와 습한 공기가 있어 네가 잘 자랄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말레이 지역이 원산지인데 이렇게 광범위하게 분포하게 된 것은 사람들이 옮겼거나 아니면 조류의 영향일 것이다. 너의 열매는 휴대하기 쉽고, 잘 썩지 않기 때문에 탐험선이나 카누 등에 싣고 옮겨 다닐 수 있었다. 연녹색 겉껍질 안쪽에는 목질의 섬유질층 있는데 이는 과육이 퇴화하여 생긴 것이다. 가볍고 성기게 형성되어 있는 섬유질 사이에는 공기가 있기 때문에 부력을 생성하여 물에 잘 뜰 수 있게 한다. 즉, 바닷물에 잘 견디고 가라앉지 않고 물에 뜨기 때문에 조류를 타고 먼 곳까지 갈 수 있으며, 바다에서 3개월 이상을 떠다닌 후에도 싹을 틔울 수 있기 때문이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를 보면, 무인도에 표류한 주인공이 너의 열매 속에 있는 물을 마시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하는 웃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 나온다. 그곳 무인도에 네가 없었다면 그는 아마 그곳에서 죽었을 것이다. 너는 그를 살린 것이다.

너의 한 그루는 사람과 비슷하게 한 80년 살면서 원없이 다 주고 간다. 너의 한 그루로 아버지, 아들, 손자 삼대를 부양할 수 있기 때문에 ‘삼대 나무(three-generation tree)’라고 불린다. 보통 심은 후 약 12살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다 자란 나무의 몸통은 직경이 약 46cm, 키는 30m 정도이며, 잎은 약 4m로 20여 개 정도 된다. 

어느 정도 자란 어린 녹색의 열매 안에는 약 1ℓ의 코코넛 워터가 있다. 2차 대전 중에 어린 코코넛 워터는 링거 주사액으로 쓰여 열대의 태평양 주둔군 병사들을 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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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가 더 자라면 얇고 하얀 과육이 안쪽을 채우는데, 이 부분은 우리가 스푼으로 파먹는 부분이다. 그러니 코코넛 워터와 하얀 과육을 사먹으려면 아주 크지 않은 녹색의 열매(kelapa muda)를 고르는 것이 좋다.

이보다 더 자라면 과육은 두껍고 단단해지며, 코코넛 워터는 밋밋한 맛이 된다. 두꺼운 과육을 파서 말린 코프라(copra)는 주로 코코넛 오일을 추출하는데 쓰인다. 

너의 열매가 나이가 더 들어 땅에 뚝 떨어진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발아하는데, 안쪽 껍질에 흰색의 스펀지 같은 것이 남아 있는 과육과 코코넛 워터를 흡수하면서 싹을 띄운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세계 90여개 국가에서 자라며, 2016년 열매 생산량은 총 59백만톤으로 이중 인도네시아가 17.7백만톤(1위), 필리핀 13.8백만톤(2위), 인도 11.1백만톤(3위), 브라질 2.6백만톤(4위)을 기록하였다.

“코코넛 나무를 심은 사람은 자신과 후손들을 위해 음식과 음료, 배와 옷을 마련하고 집을 짓는 사람”이라는 동남아의 격언이 있다. “코코넛 나무의 쓰임새는 1년 365일과 같이 많다”라고 인도네시아인들은 말한다.

네가 열대지역 사람들에게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주니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로 불린다. 너는 VIP 중의 VIP, 즉 MVP(Most Valuable Plant)인 셈이다.

너의 쓰임새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그 경제적 가치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쓰임새 몇 가지만 예로 들면 그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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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아침은 집안팎을 청소하는 빗자루 소리로 시작된다. 네가 인도네시아 아침을 연다. 그 빗자루는 너의 주맥(midrib)으로 만든다. 너의 주맥은 강하고 내구성이 좋기 때문에 빗자루로 만들기 제격이다. 한국의 싸리 빗자루보다 섬세하고 가볍기 때문에 한 손으로 들고도 능숙하게 청소를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전설에서 너는 대체적으로 다산이나 풍요와 관련되어 있다. 자바와 발리에서 데위 스리(Dewi Sri) 여신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데위 스리는 순다 지역에서는 냐이 뽀하찌(Nyai Pohaci)로 불린다. 그녀가 죽자 그녀의 머리에서 네가 자랐고, 배꼽에서는 벼가 자라기 시작했다고 한다.

발리 여성들은 해가 뜨면서부터 가족사원에 있는 발리 힌두교의 최고신인 상향위디와사(Sanghyang Widi Wasa) 등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짜낭사리(canang sari)를 바친다. 발리어로 sari는 ‘꽃, canang는 ‘코코넛 나무 잎으로 만든 조그만 바구니’를 말한다.

발리에서 건물들의 높이는 법적으로 인근에 있는 너의 키보다 높아서는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발리에는 그런 법적인 규제가 없다고 한다. 다만, 건물 자체의 높이는 15m를 넘지 않아야 하며, 기술적인 문제 등으로 15m를 넘겨야 할 경우에는 허가를 받아 지으면 된다고 한다. 발리 사람들이 건물이 풍광을 해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급적 너의 키를 넘지 않게 건물을 지으려는 배려로 이해된다. 

인도네시아인들이 그들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무 중 하나가 바로 너이다.

인도네시아의 작곡가인 이스마일 마르주끼(Ismail Marzuki)가 작사 작곡한 Rayuan Pulau Kelapa(야자섬의 매력)은 “평화롭고 윤택한 나라/ 정말 기름진 야자수의 섬/ 민족이 경배하는 자스민의 섬/ 아주 오랜 전부터/ 야자수는 해변에서 손짓하고/ 바람은 속삭인다/ 아름답고 우아한 섬은 찬양한다/ 나의 조국 인도네시아를”이라고 노래한다.

우리가 늘상 보고도 지나치는 너의 친구들 – 합쳐 ‘야자수(椰子樹)’라고 부름 - 중에는 크고 늘씬해서 가로수로 많이 심은 빨럼 라야(palem raya), 기름을 짜 돈벌이로 쓰이는 끌라빠 사윗(kelapa sawit), 옛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종이 대신 쓴 론따르(lontar), 빈랑자(樓榔子)라 불리는 열매를 맺는 삐낭(pinang), 붉의 색의 시누대 같은 빨럼 메라(palem merah) 등이 있다. 같은 것 같으면서 조금씩 다르다. 

네가 다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나는 다시 인도네시아를 떠나리라. 내 곁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일상의 무감각에서 벗어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 애정을 보내는 나를 다시 만날 때까지… 

* 이 글은 데일리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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