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중순부터 한 달 간 스페인, 포르투갈, 쿠바를 다녀온 뒤로 갑자기 내 마음의 풍경은 황량해지다 못해 몹시 황폐해지는 듯합니다. 마치 물도 떨어진 채 건너야 할 사막은 끝을 알 수가 없는데 모래 바람은 몸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 느낌입니다. 황사나 미세먼지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이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거친 말들에서 그 이유를 찾습니다. 4월과 5월이 되면서 벌어지는 정치판의 다툼은 더욱 이런 생각을 확신하게 합니다.
시인은 “우리는 언제나 왼쪽과 오른쪽을 견주어/저울과 바퀴를 만들고 벽을 쌓았다//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자유롭게 널려진 산과 들과 바다를/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고//…//아직도 우리는 모르고 있다/오른쪽과 왼쪽 또는 왼쪽과 오른쪽으로/결코 나눌 수 없는”이라고 40년 전(1979)에 이미 우리의 분별없는 구분과 이로 인한 배타성을 지적하고 있는데, 여전히 우리 정치인과 언론은 좌·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있다는 얘기겠지요.
조선시대의 붕당(朋黨)정치는 지극히 배타적이었던 모습으로 일관되었습니다. 겉모습은 철학적, 이념적 대립이었지만 사실은 비현실적인 논쟁을 통해 상대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겠다는 지극히 비민주적이며, 비타협적인 ‘Winner takes all.’이나 ‘all-or-nothing’의 이전투구(泥田鬪狗)였던 것입니다. 조선 왕조가 멸망한지 백 년도 더 지났고, 민주정치체제를 들여온 지도 70년을 넘겼건만 아직도 우리 정치는 붕당정치를 답습하고 있는 듯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물론 제 마음의 풍경이 황량한 것은 아직 수양(修養)이 부족한 탓으로 여겨야 할 터입니다. 언제쯤에나 세상의 풍진(風塵)에 휘둘리지 않고 청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는지요.
다시 한 번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김상균 약력
김상균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부산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5년 무크지 <가락>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자작나무, 눈, 프로스트>와 <깊은 기억> 등이 있다. 대학 강사와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교감으로 정년퇴임하였다.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는 사진작가이며, 일찍부터 영화와 음악에 대한 시와 글을 써온 예술 애호가이자, 90년대 초반부터 배낭여행을 해온 여행 전문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