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신성철]'98년 5월사태… 그후 20년 무엇을 얻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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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철]'98년 5월사태… 그후 20년 무엇을 얻었나?'

기사입력 2018.05.3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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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jpg▲ 지난 17일 자카르타외신기자클럽(JFCC)에서 패널토론회가 열렸다. 왼쪽에서 두번째가 리잘 람리 전 경제조정부 장관. [데일리인도네시아 2018.5.17]
 

글 :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

해질 무렵 높은 빌딩에서 바라본 자카르타는 폭격을 맞은 듯 화염과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전쟁터 같이 총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날 낮에는 폭도로 변한 시민들이 쇼핑몰과 상점의 유리문과 셔터를 부수고 들어가 무차별 약탈에 이어 방화를 자행했다. 인도네시아가 무정부 상태와 같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는 1998년 5월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끔찍한 상황이다. 

‘98년 5월사태’ 또는 ‘98년 5월 민주항쟁’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1965년 발생한 9·30 공산쿠데타와 함께 인도네시아 현대사에 큰 획을 긋는 중대한 사건이다. 두 사건의 공동점은 경제위기 속에서 발발했고, 큰 부를 축척한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이 표적이 됐다는 점이다. 

다행스럽게 1998년 당시 32년을 철권 통치한 수하르토 대통령이 하비비 부통령에게 권력을 넘겨주면서 진정된다. 이 사건으로 이른바 ‘신질서시대’(Orde Baru)라고 불리는 수하르토 집권기가 막을 내리고 ‘개혁시대’(Reformasi)를 맞게 된다. 그후 20년 인도네시아는 무엇을 이루었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5월 민주항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했으나 민주주의는 성취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인도네시아 경제부처 장관을 여러 차례 역임한 리잘 람리 경제학자는 최근 자카르타외신기자클럽이 주최한 패널토론회에서 개혁시대 20년을 한마디로 ‘범죄민주주의(criminal democracy)’라며 부패한 정치인들을 꼬집었다. 현지 일간지 자카르타포스트는 ‘5월사태 피해자들은 아직도 진실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한다’며, 지금도 진상규명이 쉽지 않음을 시사했다.  또다른 현지신문 자카르타글로브와 인터뷰 한 모 시민운동가는 “수하르토 시대에는 자유가 비쌌지만, 지금은 질서가 비싸다”라며, 자유가 변질돼 방종으로 흐르는 현실을 지적했다.

1997년 금융위기 직전인 1995년에 인도네시아는 경제성장률 8%를 웃도는 고성장을 구가했고, 1인당 국민소득이 1,023달러로 크게 증가하는 등 호황기를 누렸다. 이후 경제가 침체되고 금융위기를 맞게 된다. 통화위기에 처한 국가의 사례를 보면 내적인 요인과 외적인 요인들이 잘 결합되어 있으나, 외부보다는 내부적인 요인이 더 중대하다.

내부요인을 살펴보면, 외환위기를 맞던 1997년 당시 7선이 확실시된 76세의 수하르토 대통령의 건강과 후계자 문제도 정치적인 불안을 가중시켜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또 장기집권으로 인한 고질적인 부패와 정경유착, 족벌주의에 개혁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금융 부문의 부실도 경제 위기의 큰 원인이다. 그동안 인도네시아 금융산업은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였으나, 정부의 감독능력 부족과 많은 간섭으로 인해 효율적인 자원 분배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 특히 그동안 은행신용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부동산 부문에 대한 여신이 크게 증가하였는데, 경기둔화와 공급 과잉으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은행의 부실로 이어지게 된다. 
 
외부요인으로는 국제경기가 하락하면서 수출증가세가 둔화된다. 인도네시아의 수출증가율은 1995년 26.6%에서 1996년 6.4%로 크게 둔화되었는데, 이는 세계 전자시장 침체 및 주변국들의 재정긴축 등 경기적인 요인 이외에도 중국과 베트남 등 저가 노동집약형 제품을 수출하는 경쟁국들의 부상에 따른 국제경쟁력의 상실과 같은 구조적인 요인 때문이었다. 

수하르토가 실각한 이후 개혁시대를 맞이한 인도네시아는 하비비, 압두라만 와힛(일명 구스두르), 메가와띠 수까르노뿌뜨리 정권 등 과도기간인 6년여 동안 3명의 대통령이 집권하는 등 혼돈에 빠졌다. 이후 인도네시아 국민은 2004년 대통령 직접선거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을 선택했다. 유도요노 집권기 10년 동안 중국의 경제성장에 편승해 원자재 수출이 급증하고, 5~6%대 경제성장을 구가하면서 G20국가(주요 20개국)로 발돋움했다. 또 금융개혁을 통해 안정적인 금융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개혁시대에는 국가권력 구조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대대적인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의 권력이 축소되는 반면, 의회의 권력의 강화된다. 국토의 효율적 발전을 위해 행정체계를 중앙집권에서 지방분권체제로 바꿨다. 신질서시대 때 억눌렸던 이슬람교가 부상하면서 온건ㆍ중도ㆍ강경 등 다양한 이슬람 정당이 설립됐다. 사회·문화 측면에서 다양성이 확대되면서 각 종족과 지역별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허용하는 등 화인에 대한 유화정책도 도입했다.

하지만, 아직도 부유층과 유력인사가 연루된 부패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올해 초 발표한 2017년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인도네시아는 100점 만점에 37점으로 180개국중 96위를 기록하는 등 개선이 더디다. 농업과 제조업 등 산업 구조조정에 성과를 내지 못해 쌀과 대두 등 농산물을 대량으로 수입하고 자원 중심의 수출 구조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또 강경 이슬람이 정치와 사회에 깊게 관여하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바수끼 짜하야 뿌르나마(일명 아혹) 전 자카르타 주지사가 이슬람 신성 모독으로 실형을 선고 받고, 유력한 당선자임에도 불구하고 주지사 선거에서 낙마한 사건은 대표적인 예다. 

리잘 람리 경제학자는 ‘98년 5월 민주항쟁’ 이후 인도네시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 경제 상황에 대해 거품의 위험성을 시사하면서도 “1997년 금융위기 때와 현재를 비교할 때, 지금 인도네시아 경제의 기초체력은 상대적으로 건실하다”며 “인도네시아는 느리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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