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양승윤 칼럼] 왜 동남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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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윤 칼럼] 왜 동남아인가?

기사입력 2017.07.0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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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양승윤 (한국외대 명예교수/동남아학)

역사와 문화도 변하고 그 중심축도 이동한다. 
인류 문명의 중심지는 오랫동안 수량이 풍부한 아시아의 긴 강 주변에서 전개되었고, 유럽의 식민통치시대로 이어졌다. 유럽 중심의 세계사는 제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미국시대를 열었다. 21세기로 넘어서면서 미국은 더 이상 독자적으로 변화무쌍한 국제사회의 중심이 되기 어렵다. 그래서 다시 아시아시대가 오고 있다고 한다. 아시아는 지구의 반이다. 어디가 그 중심인가에 대한 논란이 진행 중이다. 유교와 이슬람 문화가 교차하는 지역일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대두되고 있다.  

우리말이 유창한 주한 베트남 대사의 한 분은 얼마 전 한 강연에서 ‘아시아 시대의 중심지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서슴지 않고 새로운 아시아 시대의 중심지는 젓가락 문화권이 될 것이 말했다. 젓가락은 두 짝이래야 제 역할을 하며, 아래짝은 고정되어 있고 위짝만 열심히 움직이며 음식을 집어 나른다. 고정된 한 짝은 동양문화의 정체성이고, 다른 한 짝은 서양문화의 유연성이라며, 21세기는 동서 문화의 융점(融點)을 상징하는 젓가락 상용국(常用國) 한중일 3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사는 ‘베트남도 젓가락 문화권’의 일원임을 강조했다.

동아시아시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이에 대한 잠정적 결론으로 동아시아정상회의(EAS)가 등장했다. 인도로부터 한중일의 동북아를 잇고 호주와 뉴질랜드가 추가된 광활한 동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자는 것이다. 그 중심에 동남아가 있다. 동남아가 보유한 다양한 천혜의 자원, 6억 5천만의 너른 시장과 약동하는 시장성, 양질의 저렴한 노동력이 아세안과 다양한 채널의 양자 혹은 다자간의 협력체를 만들었다. 아태경제협력체(APEC)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가 아세안을 공통분모로 만들어지고, 유엔의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경쟁적으로 동남아 시장과 보다 좋은 조건으로 거래를 트기 위해서 아세안에 접근하고 있다. 

아세안 1.jpg▲ 지난 6월 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한-아세안센터 주최로 열린 아세안 음식축제에서 아세안 10개국 대표 셰프들이 각국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아세안 플러스 한중일(ASEAN+3)이 동아시아 시대의 핵심이다.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를 주장하며 미국과 유럽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잣대가 아시아에도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없음을 설파했던 마하티르(Mahathir)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동남아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이웃한 동북아에서 조달하는 상설 협력채널을 원했다. ASEAN+3가 성사된 배경이다. 냉전시대의 국제경제협력은 자본과 기술 등 두 요소의 일방통행이었다. 하나의 세계시장을 향한 WTO 체제의 글로벌 시대에는 자본과 기술 이외에도 자원, 시장성, 노동력이 필수적이다. 후자의 글로벌 시대 세 경제요소가 모두 동남아에 집중되어 있다. 

미국과 일본이 우리의 경제를 주무르던 시대가 있었다. 이제는 아니다.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세계 강자로 등장하였고, EU가 좀 더 가까워졌다. 동북아에서 우리는 중국과 일본에 힘겨운 경쟁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 동남아가 있다. 2015년 말 하나의 아세안공동체를 만든 동남아는 우리에게 포스트 차이나가 분명하다. 동남아는 우리의 두 번째 교역대상지역으로 우리는 매년 300억 달러의 흑자를 내고 있다. 동남아에 대한 투자(2016년)도 중국(33억)과 EU(25억)를 제치고 50억 달러로 압도적인 수위다. 우리의 강점인 해외건설 수주도 동남아가 중동과 수위를 다투고 있다. 

동아시아시대를 주도하려는 리더십 경쟁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과 일본은 아베의 유화(宥和)정책을 목표로 한 대규모 엔화 공여로 동남아에 대한 전방위적 총공세를 하면서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무력시위에 나서고 있다. 동남아에서 중국-일본 간의 리더십 경쟁의 장기화는 우리에게는 분명히 기회다. 역내 인구 6억 5천 만의 동남아는 외부 세계의 지속적인 러브콜에 힘입어 매년 5%대의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동남아의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3개국의 평균연령(2015년)이 27세다. 중산층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당연하게 소비시장이 활발하다. 우리가 기회를 살려 자본과 기술협력에 힘쓴다면, 동남아의 자원, 시장성, 노동력과의 상생적(相生的) 동반자 관계를 장기적으로 공고화 할 수 있다.  

한반도 문제도 동남아에서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아세안이 우리의 지정학적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한반도 주변의 4강은 우리의 숙명이며, 남북관계는 우리가 꼭 풀어야 할 역사적⋅국가적⋅국민적 과제가 분명하다. 지속적인 대 동남아 관계증진을 통하여 한반도의 취약점과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고 본다. 동남아는 과거 비동맹이 동서 냉전의 풍향계 역할을 하던 시대에 쟈카르타에서 프놈펜과 하노이를 거쳐 베이징과 평양을 잇는 비동맹 고속도로의 남부 거점이었다. 당시 김일성과 수카르노는 모택동, 시하누크, 호치민과 더불어 호형호제하던 반(反)제국주의 혁명대오의 선봉장들이었다. 

지난 4월 미국의 북핵 선제타격설이 난무할 때, 중국의 인터넷 매체에는 북한의 김정은이 곧 인도네시아로 망명할 것이라며 전인대 상무위원장이자 중국 권력서열 3위인 장더장(張德江)이 김을 설득할 것이라고 했다. 남북한 대사와는 별도로 한반도 대사직제(메가와티 대통령 당시)를 두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세계 4강의 유화정책 대상국인 동시에 북한이 중국 다음으로 꼽는 우방국이다. 김정은 등장 후 처음으로 초청하는 우방국 국가원수의 첫 번째 순서로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을 꼽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의 전임 대통령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에게 공개적으로 첫 번째 초청장을 보냈다. 인도네시아는 3년 여 ‘킬링필드’의 여파로 전체 인구 1/3이 사라진 캄보디아 문제를 중재하면서 해당 정파 실력자들을 쟈카르타로 불러들여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를 짐(JIM: Jakarta Informal Meeting)이라고 명명했었다. 

국제사회의 입지가 급격하게 좁아지고 있는 북한은 동남아에 외교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북한은 아세안 10개국 중 브루나이와 필리핀을 제외한 8개국에 상주공관을 두고 있고, 아세안측에서도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6개국이 평양에 상주공관을 개설하고 있다. 태국도 곧 평양 공관을 열 것으로 예상된다. 아세안에서는 연례행사로 아세안정상회의를 비롯하여, 동아시아정상회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이 열린다. 아세안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형태의 국제회의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동남아의 협력과 지지가 긴요하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아세안은 남북한 모두에게 유엔 못지않게 중요한 파트너다. 다행스럽게도 아세안 국가들과 우리는 역사문제의 쟁점이나 영토분쟁 같은 갈등요인이 전무하며, 개별 국가 관계에서도 감추어야 할 어떠한 미심적은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한반도 문제를 아세안 구도에 접근시키기 위해서는 아세안의 기본 원칙인 만장일치와 내정불간섭이라는 ‘투 트랙’ 전략에 유념하여야 한다. 아세안이 지역협력기구로 동남아 역내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정치 외교적 전략과 대 역외 경제협력 전략은 분명히 하나다. 그러나 사안에 따라서는 개별 국가의 전략도 엄존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북핵문제 같은 예민한 문제는 투 트랙 전략을 동시에 가동하여야 한다. 지난 달 대통령의 북핵 특사가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3개국을 순방하였다. 나름대로 세심한 준비를 한 것이 분명하지만, 서울 주재 몇몇 아세안 대사들은 조심스럽게 개별 국가 전략의 필요성을 내비쳤다. 내정불간섭 원칙에 따라 회원국 마다 감추고 있는 히든카드에 유념하라는 것이다. 1999년 2월 중동의 해결사였던 후세인 요르단 국왕의 장례식에 미국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조지 부시, 카터, 포드 등 3명의 전직 대통령 등 4명의 대통령이 참가했음을 상기시키면서, 북핵 문제에는 라오스가 동남아의 요르단일 수도 있다고 했다.

특사 .jpg▲ 지난 5월 23일 오후 인도네시아 보고르 대통령궁에서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특사로 동남아 국가를 순방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조꼬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예방해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문화적 이해제고와 공감대 확대도 필수적이다.
2016년 한 해 600만 명의 한국인이 동남아를 방문하였다. 동남아에서도 약 200만 명이 관광객, 근로자, 유학생 등의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상호 교류하였다. 2015년 말 정부 통계로 143개국에서 온 15만 명의 외국인 배우자가 국내에 있다. 그 중에서 조선족이 대거 포함된 중국인이 제일 많고, 베트남, 일본, 필리핀 등 3개국이 다음 순서인데, 조선족을 별개로 하면 베트남이 4만 명으로 단연 1위다. 필리핀 신부도 1만 명에 가깝다. 국내 거주 동남아 사람들은 대략 50만 명이다. 같은 수치의 한국인이 동남아에 살고 있다. 문화적 이해제고와 공감대 확대는 이제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국가 과제가 되었다.

동남아는 전 세계에서 한류문화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지역이다. 이곳 사람들은 한류문화를 통해서 한국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다소 과도하며 때때로 무모한 목표의식과 경쟁심도 문화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새마을 운동, 금 모으기 운동, 기능올림픽의 연패, 부패방지위원회의 역할, 세계적인 한류 스포츠 스타들의 활약 등에 매료되어 있다. 한류문화를 매개로 한 문화적 소통을 통해서 동남아의 젊은이들은 “우리도 한국만큼 할 수 있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주요 대학마다 한국학이 인기를 끌고 있는 배경이다. 

동남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요구되고 있다.
동남아 각국은 모두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싱가포르와 브루나이 같이 국민소득이 5만 달러가 넘는 나라도 있다. 대부분의 국가는 소득 격차가 현격하게 크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이 나라 2억 5300만(2017년 추계) 국민 중 상위 20%(5천만 명)의 총소득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 5천만 명과 같다. 한국과 함께 G20국가군에 속한 인도네시아에 대한 세계 경제전문기관의 향후 전망은 우리의 경우보다 낙관적이다. 당장의 손에 잡히는 소득으로 문화수준을 평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동남아 국가들은 스스로를 문화대국이라고 한다. 오랜 서양문화권과의 교섭으로 인하여 동양문화권(국가주의와 공동선)인 이 나라는 폭넓게 서양문화(실용주의와 개인주의)를 포용하고 있다. 동서 문화권의 장점을 고루 보유하고 있고, 모든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신실한 종교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형상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의 경우, 이 나라는 정교일치의 정치적 이슬람 대신 이슬람의 만인평등을 모토로 하는 사회적 이슬람을 추구하고 있다. 이로 인해서 국제사회는 이 나라를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발전된 이슬람국가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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