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인도네시아와 주변 믈라유 문화권의 불교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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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와 주변 믈라유 문화권의 불교 (최종)

기사입력 2017.04.1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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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도네시아와 주변 국가의 불교문화 개황
글: 양승윤 한국외대 명예교수 / 가자마다대 초빙교수

다음글은 2017년 3월 2일자 불교평론에 게재된 '인도네시아와 주변 믈라유 문화권의 불교'라는 제목의 글을 불교평론으로부터 허락을 받아 총 5회에 걸쳐 데일리인도네시아에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는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 4대 인구 대국으로 전체 인구 2억 5,300만 명(2016년)의 87%가 무슬림인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이다. 국토도 동남아의 적도 상에 1만 7,508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동서로 최대 6,000㎞, 남북으로 2,000㎞로 길고 넓게 분포되어 육지 면적만 192만㎢에 달한다. 세계 최대의 도서(島嶼) 대국이기도 한 이 나라의 내해(內海) 면적은 650만㎢로 육지 면적과 합치면 미국(984만㎢)과 엇비슷한 842만㎢가 된다. 

이 나라의 정체(政體)는 공화제이며 종교적으로는 세속국가임을 명시하고 있는데,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더 나아가서 ‘모든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등식이 적용되어 모든 국민은 국가가 보장하는 종교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국가종교로 이슬람 이외에 힌두교와 불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나아가서 유교(儒敎)까지 보장하고 있다. 당연하게 국가 공휴일에 종교 축일이 가장 많다. 

인도네시아 통계청의 2000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0.8%인 170만 명이 불교도로 나타났다. 2016년의 인구를 같은 백분율로 적용해도 불교도는 약 20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잠재적인 불교도는 이 수치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2006년 2월 유도요노 대통령에 의해서 유교(儒敎)가 인도네시아의 여섯 번째 국가종교로 공인되면서 주민등록증(KTP)에 자신의 종교를 유교로 명시한 국민이 전체 인구의 약 4%에 달했다. 1,000만 명이 넘는 숫자다. 거의 모두가 중국계인 이들을 잠재적인 불교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하르토 정권 32년 동안, 군부의 반중(反中) · 반공(反共) 정책에 따라 이들은 질곡(桎梏)의 세월을 보냈다. 많은 숫자가 해외로 탈출하였고, 불교 사찰이 폐쇄되었으며, 한자 간판이 철저하게 통제되었다. 중국 문화를 상징한다 하여 붉은 글씨를 엄금하고, 촛불까지도 경계의 대상으로 삼았다. 아직도 이들이 선뜻 불교도로 나서기를 꺼리는 이유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래 중국계 국민에 대한 인식과 행정적 경계가 와히드(A, Wahid)와 메가와티(Megawati S.) 대통령 통치기를 거치면서 점차 우호적으로 변화하였다. 유도요노(S. B. Yudhoyono)는 자신의 통치 말기 인도네시아 정부의 공식문서에 중국(中國)은 띠옹꼭(Tiongkok)으로, 중화(中華)는 띠옹후아(Tionghua)를 사용한다는 대통령령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인도네시아의 불교는 다양한 불교문화가 혼재되어 발전해왔다. 그 갈래를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고대 인도의 초기불교인 마하야나(Mahayana), 태국의 테라바다(Theravada), 일본의 선불교(禪佛敎), 뜨리다르마(Tridharma)라 칭하는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道敎)가 합쳐진 유불선교(儒佛仙敎), 보로부두르 대탑사원을 건축했던 사일렌드라와 마쟈빠힛 왕조에서 번성했던 밀교 형태의 탄뜨라야나(Tantrayana) 등이다.

이 나라의 불교도는 대부분이 중국계이다. 이들은 수도 자카르타 일원에 거주하거나, 수마트라 리아우 주와 말레이반도와 싱가포르를 에워싸고 있는 리아우군도 주, 그리고 인근의 주석(朱錫) 산지인 방까(Bangka)와 블리뚱(Belitung) 두 섬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 지역은 모두 전통적인 중계무역항 싱가포르항(港) 인근에 모여들었던 중국인 후예들의 군거지다. 비록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이슬람이 대종을 이루고 있는 자바(Jawa)족이나 발리의 동쪽 롬복 섬의 사삭(Sasak)족 중에 불교도가 발견된다. 이들의 불교는 중국계 후예들과는 차별적으로 과거 스리비자야 왕국의 불교적 전통이 토착화된 것으로 보인다.

자카르타의 차이나타운 글로독에 금덕원(金德院)이라는 큰 절이 있다. 다르마박티 사원(Wihara Dharma Bhakti)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와 공자를 같이 모신 서원(書院) 같은 사원이다. 이 사원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시대 초기인 1650년에 중국 남부 푸젠(福建) 사람들이 세웠다. 금덕원의 중국어 발음인 킴텍레(Kim Tek Le)라고 명명하고 고단한 이주노동자들의 안식처로 삼았다. 네덜란드는 오늘날의 자카르타인 바타비아 건설을 위해서 많은 인력이 필요했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주로 푸젠성 출신들이었다. 1740년 10월에 벌어진 앙케(Angke) 사건은 과다하게 집중된 중국인들에 놀란 네덜란드 VOC정부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대량학살이었다. 만 명의 중국인들이 희생되었고, 킴텍레(金德院) 사원도 이때 소실되었다. 초기 불상들이 잿더미 속에 남아 있었고, 생존한 중국인 후예들이 그 후 계속된 정치적 격변의 인위적 재앙 속에서도 금덕원은 재건과 복원을 거듭하였다. 이곳에는 1825년에 제작된 범종이 남아 있어서 오늘도 먼 곳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불상.jpg▲ 중부자바 마글랑 소재 보로부두르 불교사원의 불상. (데일리인도네시아 자료사진)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는 믈라유족 이외에도 중국계와 인도계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공존하는 나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의 100년 식민통치를 벗어나 독립하면서 신생 독립국가에서 정권을 책임지게 된 믈라유계 지도자들은 중국계와 인도계 주민들을 국민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을 하였다. 이들 중국계와 인도계 주민은 영국 식민통치 시기인 20세기 초부터 중반 이전에 말레이반도로 대거 유입되었다. 주석광산에서 일한 중국계는 무역과 금융, 상업과 유통 쪽으로 발판을 굳혔고, 고무농장으로 몰려들었던 인도계는 점차 사회 직능분야로 파고들었다. 기관차 운전기사 등 특정 기술 분야와 의사, 변호사, 건축설계사, 회계사, 보석감정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여 종족 분규에 휘말리지 않을 독자적인 분야로 진출하였다. 인도계 주민들이 주로 맡아 하는 환전상(換錢商) 같은 소시민 금융업이나 점성술사 같은 직업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에서 태국 다음으로 전체 인구 대비 중국계 주민이 많은 나라이다. 이 나라에는 중국계 정당이 있고 믈라유계와 인도계와 더불어 거대한 연립여당을 형성하고 있다. 2010년 인구센서스에에 따르면 전체 인구 2,833만 명의 23.4%인 663만 명이 중국계였다. 2017년 추계도 나와 있는데, 전체 인구 3,130만 명에 같은 비율을 적용하면, 73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주로 삐낭(Penang),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 조호르(Johor), 뻬락(Perak), 슬랑오(Selangor), 사라와크(Sarawak) 등에 군거한다. 쿠알라룸푸르와 슬랑오는 금융 중심지이며, 삐낭과 조호르는 무역항이고, 뻬락과 사라와크는 광업(鑛業) 중심지다.

불교는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교 다음으로 비중이 큰 종교이다. 주로 중국계 국민이 불교를 믿는다. 불교도의 분포를 나타내는 다양한 수치가 있는데, 약 20%를 중심으로 적게는 19.2%부터 19.8%까지, 많게는 21.6% 등, 여러 통계가 있다. 2017년 인구(공식 추계) 3,130만 중 약 23%가 중국계인데, 전체 인구의 20% 정도가 불교도인 셈이다. 중국계 중에도 당연하게 비불교도가 있듯이, 이 나라의 불교도에는 소수의 태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을 비롯하여, 스리랑카계와 미얀마계도 포함되어 있다. 

다종족국가인 말레이시아는 정치적으로 짜 맞춘 종족 간의 화합구도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종족 문제나 종교 문제를 깊게 다루는 조사나 연구를 법률로 금하고 있다. 대부분의 세밀한 통계는 외부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면 된다. 2017년 추계를 다룬 최근 통계에는 50.1%가 믈라유족, 22.6%가 중국계, 11.8%가 원주민, 6.7%가 인도계, 그리고 기타 종족이 8.8%로 나타나 있다. 이 중에서 원주민들(주로 사바의 카다쟌족과 사라와크의 이반족)은 말레이시아 정부에 의해서 믈라유계 국민의 숫자를 늘리는 데 활용되었다. 종교 분포로는 61.3%가 이슬람, 19.8%가 불교, 9.2%가 기독교, 6.2%가 힌두교, 그리고 나머지 3.4%가 토속신앙 등 여타의 종교를 신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계 국민이 주로 신봉하는 이 나라의 불교는 중국의 도교(道敎)와 원시불교인 마하야나가 혼합된 형태이다. 중국계가 집단으로 거주하는 삐낭 섬에 켁록시(Kek Lok Si)라는 사원이 있다. 극락사(極樂寺)다. 웅장하고 세밀함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켁록시는 동남아를 대표하는 불교 사찰 중 하나인데, 1890년에 시작하여 1905년까지 축조하였고, 다시 1930년까지 보완하였다. 이 사원은 초기 말레이반도로 건너오기 시작한 객가(客家) 출신 기업인들이 만들었다. 객가 사람 중에는 독실한 불교도이자 말레이시아의 저명한 기업인 겸 정치가로 탄쳉록(Tun Dato’ Sir Tan Cheng Lock, 1883~1960)이 있다. 우리말 표기 한자로는 진정록(陳禎祿)인데, 그는 오늘날의 말레이시아가 정치적으로 혼란을 겪던 1949년 말레이중국인협회(MCA: Malayan Chinese Association)를 결성했다. 그리고 말레이계 지도자들과 끈질긴 협상을 통하여 종족 간의 정치적 대타협을 이루어내어 다민족국가를 위하여 화합과 융화를 추구한다는 최선의 차선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싱가포르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중국인의 나라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지난 1970년대 이래로 계속해서 종족 구분을 하지 않고 정치적 · 사회적 통합을 국가 목표로 규정해 왔다. 그래서 특정 종족성을 나타내지 않고 모든 싱가포르 국적자를 싱가포르인(Singaporean)이라고 부른다. 

1970년에 207만 명이던 싱가포르 인구는 1980년에 241만, 1990년에 305만 명에 달했고, 2010년에 500만 명을 돌파하였으며, 2016년 공식 통계로 561만 명에 이를 만큼 증가 속도가 놀랍다. 동남아의 강소국 싱가포르는 2025년까지 650만의 인구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 나라의 정치적 안정과 꾸준한 발전상에 힘입어 투자이민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2010년 이후의 인구 증가 추세는 가파르지 않다. 홍콩 등지의 중국인 고액 투자자를 선호하던 정부가 ‘젊은 두뇌’의 유치로 이민정책을 선회한 까닭이다. 한 · 중 · 일 등 동아시아 주요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 이웃 아세안 강대국을 주요 타깃으로 싱가포르 유학을 장려하고 이들을 이민 권유 대상자들로 삼는다는 것이다. 2016년 싱가포르 국민의 평균 연령은 40세인데, 이를 상한선으로 보고 젊고 능력 있는 젊은이들을 싱가포르인으로 리크루트하는 데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다. 

섬나라 싱가포르 국토 면적의 변화를 보면, 인구 증가 추이 못지않게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1965년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분리 독립할 때 581.5㎢였던 국토가 2016년 공식 통계에 의하면 719.1㎢로 무려 138㎢나 확대된 것이다. 국토가 4분의 1가량 확장된 것인데, 매년 엄청난 국력을 동원하여 해안 매립을 계속해온 결과다. 그것도 주변 국가들과의 마찰과 갈등과 질시 속에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해안 매립 공사에 필수적인 모래와 자갈을 공급해 온 인도네시아 측은 싱가포르가 인도네시아의 국토를 훼손한다며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싱가포르의 종족 분포는 2016년 통계로 전체 인구 561만 명 중 중국인이 74.1%, 말레이계 13.4%, 인도계 9.2% 순이다. 여타의 소수종족은 유럽인과 중앙아시아인 등 3.3%에 불과하다. 중국계가 대종을 이루듯이 같은 해의 종교 분포 통계도 중국계의 중심 종교인 불교가 33%로 으뜸이며, 불교도는 185만 명에 달한다. 기독교가 18.8%, 이슬람이 14%, 도교나 중국 토속신앙이 11%, 힌두교가 5% 순이다. 다종족국가를 상징하듯 기타 소수 종교(무신교 포함)가 18.2%나 된다. 1987년 인구센서스에서도 전체 인구 278만 명 중 33.9%인 94만 3,400명이 불교도로 나타났다. 

싱가포르의 불교는 2,500년 전에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는 초기불교로부터 중국계 세계 이민들과 함께 들어온 전 세계의 다양한 현대 불교까지 혼재하고 있다. 또한 이 나라에는 수많은 불교 종단과 불교 재단이 발견된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으로 부처님의 치아를 모셨다는 치안혹켕(Thian Hock Keng, 佛牙寺)이 있다. 1839년에 짓기 시작하여 1842년에 완공되었는데, 성공한 푸젠(福建)성 출신 기업인들이 당시 국제화폐였던 스페인달러로 3만 달러를 모아 축조하였다. 모든 건축 자재를 중국 본토에서 실어왔으며, 못을 단 한 개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싱가포르에 정착한 중국인들은 바닷길을 지켜준 바다의 여신 마조(媽祖)를 기려서 치안혹켕을 헌정했다. 또 다른 사원으로 진롱시(Jin Long Si, 金龍寺)도 유명하다. 1941년 싱가포르를 기점으로 성공한 여러 지역 출신의 중국 기업인들이 세웠다. 이곳에는 19세기에 스리랑카로부터 싱가포르로 옮겨 심은 보리수가 청청하게 서 있는데, 밑동의 둘레가 8.5m나 되고 높이가 30m에 이른다. 

쁘람바난.jpg▲ 족자카르타 소재 쁘람바난 힌두사원의 부조. (데일리인도네시아 자료사진)
 

브루나이

세계 최고(最古)의 이슬람왕국이 브루나이(Negara Brunei Daru-ssalam)다. 9세기 초엽에 브루나이 강(江)어귀에 포니(Po-ni) 왕국이 등장했는데, 브루나이 왕국의 전신으로 생각된다. 브루나이의 번영은 12세기 초반 이슬람을 수용하고 동서를 잇는 바닷길 국제교역에 적극 나서면서 시작되었다 이 나라의 전성기에는 바타비아-브루나이-마닐라가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수많은 중계 무역상이 브루나이로 모여들었다. 이 나라는 한동안 오늘날의 사바(sava)와 사라와크를 비롯하여 술루(Sulu) 열도로부터 필리핀 북부 마닐라까지, 남쪽으로는 오늘날의 인도네시아령 반자르마신(Banja-rmasin)까지 통치권을 행사한 대왕국이었다. 1658년 왕실의 대정변이 있고 난 뒤부터 브루나이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1888년부터 1984년까지 영국 보호령으로 있다가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하였다. 

오늘날에는 석유 부국으로 동남아의 강소국이자 절대왕권이 확립된 이슬람왕국이다. 브루나이의 국토 면적은 5,270㎢로 제주도의 세 배쯤 된다. 인구는 2016년 현재 43만 명이다. 이 나라의 모든 통계수치는 법률로 엄격하게 통제하고 중앙에서 관리한다. 국가자산과 정부재정 문제를 비롯하여 국가안보와 사회적 안정을 해칠 수 있는 모든 통계치가 이에 해당한다. 이슬람에 관한 문제나 여타의 종교와 종족 문제도 이 범주 안에 든다. 2014년 통계로 이 나라 국민의 67%는 이슬람, 13%는 불교, 10%는 기독교, 나머지 10%는 토착종교를 믿는다는 자료가 있다. 

이 나라에는 술탄왕국의 폭넓은 시혜(소득세가 없고, 의료와 교육을 국가가 책임진다)를 누릴 수 없는 비시민권자들이 많다. 주로 브리티시 패스포트를 소지한 중국계들이다.
브루나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엄격한 이슬람 율법 샤리아(Shariah)를 시행하는 나라로 유명하다. 모든 교육기관에서 이슬람 교육을 강조하고, 여타 종교에 대해서는 포교 행위와 교리에 관한 사소한 홍보도 불용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내 · 외국인을 막론하고 샤리아로 다스린다. 이 나라의 형식적인 종교의 자유는 개인의 ‘신념의 자유’로 해석되며, 이슬람 이외의 종교 행위는 매우 조심스럽다. 

무갈(Mughal) 건축양식과 믈라유 전통양식이 조화롭게 배합된 이슬람 궁전 술탄오마르알리사이푸딘(Sultan Omar Ali Saifuddin)이 1958년에 완공되었는데, 아태 지역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이슬람사원으로 꼽힌다. 부유한 왕국답게 모든 이슬람사원은 아름답고 정갈하다. 불교사원도 한 곳이 있다. 수도인 반다르스리베가완(Bandar Sri Begawan)에 100년 전인 1918년에 세워진 텡윤(Teng Yun, 登云殿)이라는 이름의 작은 불교사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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