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부 자바 주 가룻 지역의 주민들. (한.인니문화연구원 제공)
글: 양승윤 한국외대 명예교수(동남아학)
인도네시아 국장(國章) 가루다(Garuda)가 날카로운 두 발로 옹위하고 있는 국가의 상징 ‘비네까 뚱갈 이까’(Bhinneka Tunggal Ika)는 쟈바 고어로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뜻이다. 이 나라는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로 17,508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동남아의 적도 상에 넓고 길게 분포되어 있다. 우리가 한반도의 길이를 표현하는 ‘백두 (산)에서 한라(산)까지’가 인도네시아에서는 ‘사방(Sabang)에서 머라우께(Merauke)까지’ 다. 사방은 아쩨(Aceh) 북단에 위치한 웨(Weh)섬의 북쪽 끝에 있고, 머라우께 (Merauke)는 파푸아(Papua)주 동남쪽 끝자락에 위치한다. 두 도시의 직선거리가 5245 ㎞로 서울-쟈카르타(5304㎞) 간의 거리다. 사방에서 메단, 쟈카르타, 쟈야뿌라를 경유하 여 머라우께까지 가는 국내선 항공기로 이동시간만 20시간 걸린다. 이처럼 광대한 군도에 300여 종족이 560여 개의 지역 언어를 사용하며 흩어져 살고 있다.
인구가 300만 이상인 종족이 쟈바, 순다, 바딱, 마두라, 브따위, 미낭까바우, 부기스, 말레이, 반떤, 반쟈르, 아쩨, 발리, 사삭, 다약 등 14개 종족이나 된다. 그 중에서 쟈바(Jawa)족이 월등하게 많고 순다(Sunda)족이 그 뒤를 잇는다. 2000년 인구센서스에서 쟈바족은 전체 인도네시아 인구의 42.0퍼센트, 순다족은 15.4퍼센트로 나타났다. 이 수치 가 2010년에도 각각 42.7퍼센트, 15.4퍼센트로 거의 변화가 없다. 인도네시아의 2017년 총 인구가 2억 6,24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2010년의 종족 규모의 백분율을 적용하면, 쟈바족은 1억 1,000만, 순다족은 4,000만 명이다. 순다족은 쟈바족의 1/3이 수준이며, 두 종족을 합치면 전체 인구의 57.7퍼센트나 된다. 쟈바족은 중부와 동부 쟈바, 죡쟈카르타에 군거하며, 순다족은 서부 쟈바에 집중되어 있다. 반둥(Bandung)이 순다족의 중심 도시다. 수도 쟈카르타와 인근의 보고르(Bogor), 브카시(Bekasi), 데뽁(Depok), 땅으랑(Tangerang) 등이 순다족의 주요 인구 밀집 도시이다.
순다 지역에는 3개의 광역 행정구역이 있다. 수도 쟈카르타와 서부 쟈바, 그리고 반떤이다. 인도네시아공화국의 수도인 쟈카르타특별주(DKI Jakarta)는 1949년 12월에 공표되었고, 반떤 주(Provinsi Banten)는 2000년 10월 서부 쟈바 주에서 분주했다. 서부 쟈바 주(Provinsi Jawa Barat)는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서부 쟈바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패전 일본이 물러가고 인도네시아에 재상륙한 네덜란드가 급조한 친(親)네덜란드 연방에 느가라 빠순단(Negara Pasundan), 즉, ‘독립국가 빠순단’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하였다. 1949년 12월에 성립된 인도네시아합중국(Republik Indonesia Serikat: Republic of the United States of Indonesia)이 연방국가의 모체였다. 이 때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사주에 의해서 느가라 빠순단을 포함하여 7개 국가와 9개 지역이 독자적으로 인도네시아합중국에 참여하였다. 이 변형된 정체(政體)는 1950년 8월까지 지속되었다. 느가라 빠순단의 당시 영역도 오늘날처럼 서부 쟈바와 쟈카르타 일원과 반떤 지역이었다. 수하르토 정권이 무너지고 문민정부가 지방분권을 지향해 가는 과정에서 순다 족은 중앙정부에 서부 쟈바주(Provinsi Jawa Barat)를 빠순단주(Provinsi Pasundan)로 개명해 달라는 청원을 내기도 하였다.
순다족들이 ‘순다인들의 터전’이라는 의미의 ‘빠순단’에 집착하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순다족들의 왕국은 669년부터 1579년까지 빠순단에 존속하며 40명의 제왕을 모셨다. 힌두왕국(Hindu Sunda Kingdom)으로, 왕국의 터전이 오늘날 순다족들이 중심을 이룬 세 광역 행정구역과 같았다. 가장 유명한 군주는 빠쟈쟈란(Pajajaran)왕국의 실리왕이(Siliwangi: 재임 1482-1521)왕이다. 네덜란드의 재입성으로 야기된 독립전쟁 당시인 1948년 인도네시아 최정예부대로 창설된 실리왕이 사단(Divisi Siliwangi)이나 1957년에 개교한 반둥의 빠쟈쟈란대학(Unpad)은 실리왕이 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순다족의 상징이다.
쟈바족을 대변하는 디포네고로 사단(Divisi Diponegoro)은 실리왕이 사단 보다 2년 늦은 1950년에 창설되었다. 좁은 쟈바에서 경쟁하던 양대 종족은 역사를 통하여 항상 긴장 상태에 있었다. 수적으로 압도적으로 우세하고 쟈바 중부의 너른 곡창지대를 장악한 쟈바족은 항상 서쪽의 순다족을 제압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강력한 화산대로 이루어진 산악지대가 집중된 서부 쟈바의 열세한 순다족은 쟈바족과 화평한 관계를 유지하며 왕국의 번영을 갈망하였다.
▲ 서부 자바 주 가룻 지역의 주민들. (한.인니문화연구원 제공)
1357년에 일어난 ‘부밧(Bubat) 참극(慘劇)’은 쟈바족과 순다족의 역사적 악연의 결정판이었다. 중부 쟈바를 평정하고 왕국을 전성기로 이끈 마쟈빠힛(Majapahit)의 하얌 우룩(Hayam Wuruk: 재위 1350-1389)왕은 순다 왕국의 링가부아나(Linggabuanawisesa)왕에게 공주를 달라며 청혼하였다. 찌뜨라 라쉬미(Citra Rashmi)라는 애칭을 가졌던 댜 삐딸로카(Dyah Pitaloka) 공주는 절세미인이었다. 링가부아나는 마쟈빠힛 왕국과의 화평시대가 도래하였음을 기뻐하며 기꺼이 하얌 우룩 왕과 결혼동맹을 맺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왕 자신이 왕비와 공주와 함께 왕실의 주요 대신 100여 명을 대동하고 쟈바 해와 브란타스(Brantas) 강을 건너 마쟈빠힛의 수도 모죠꺼르또(Mojokerto) 인근의 뜨로울란(Trowulan)에 위치한 혼사 예정지 부밧 광장에 당도하였다.
하얌 우룩 왕의 선대부터 마쟈빠힛의 명재상(名宰相)으로 이름을 떨치던 가쟈마다(Gadjah Mada: 재임 1313-1364)는 왕실 간의 혼사를 이용하여 순다를 복속시키고 쟈바를 통일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이에 따라 순다의 공주는 마쟈빠힛의 정비가 아닌 후궁으로 받아들인다는 계략이 꾸며졌다. 모멸감에 온 몸을 떤 링가부아나 왕이 즉시 귀국을 명령하였고, 이를 기다리며 사전에 부밧 광장을 에워싸고 있던 마쟈빠힛의 군대가 링가부아나 왕과 왕실 인사들을 간단히 제압하였다. 공주는 자결을 택하였다. 인도네시아 정사(正史)의 원천이 된 마쟈빠힛 왕국의 역사서 나가라꺼르따가마(Nagarakertagama)에는 한 줄도 나오지 않는 부밧 참극은 쯔리따 빠라향안(Cerita Parahyangan)이나 빠라라톤 느가라(Pararaton Negara) 같은 다양한 형태의 순다 고전을 통해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순다족은 쟈바족과의 혼인을 터부 시하는 역사적 배경이다.
순다족과 쟈바족은 언어면에서 음식문화와 예술분야에서 특히 차이를 보인다. 쟈바족의 인명이나 쟈바족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지역명은 대개 ‘o’로 끝난다. 수카르노(Sukarno), 수하르토(Suharto), 유도요노(Yudhoyono) 같은 전직 대통령 이름이 그렇고, 뿌르워꺼르토(Purwokerto), 솔로(Solo), 뽀노로고(Ponorogo) 같은 지명이 그렇다. 한반도 대사를 역임한 나나 수트레스나(Nana Sutresna), 역대 외무장관을 지낸 목타르 꾸수맛마쟈(Mochtar Kusumaatmadja), 핫싼 위라유다(Hassan Wirajuda), 마르티 나탈레가와(Marty Natalegawa) 같은 인물이나 수도 쟈카르타(Jakarta) 같이 순다족 이름이나 지명은 ‘a’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순다족들은 야채와 다양한 삼발(sambal)을 즐긴다. 순다족의 식탁에 고기나 생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쟈바족과 비교하면 순다족의 야채류 선호도가 확연하게 눈에 띈다고 한다. 순다족은 온순하고 공손하고 남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러한 순다족의 순수함을 순다어로 ‘소메아 하데 까 스마(someah hade ka semah)’라고 한다. 이들이 인도네시아의 많은 종족 집단 중에서 가장 순수한 이슬람을 받아들인 이유일 것이다.
Wikipedia 자료(2017년)에 따르면, 순다족의 종교는 이슬람 일색임을 알 수 있다. 이 자료는 이슬람이 99.8%, 순다 위위딴(Sunda Wiwitan)이 0.1%, 기독교가 0.1%로 나타났다. 순다 위위딴은 순다지역의 정령숭배 신앙으로 반떤 지역의 순다족 계열인 소수의 바두이(Baduy 또는 Badui)족이 신봉하고 있다. 이 자료는 순다족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기독교 미전도(未傳道) 종족 중의 하나라고 덧붙이고 있다. 쟈바 이슬람은 ‘끄쟈웬(Kejawen)’이라 하여 이슬람 내도 이전의 힌두불교와 전통사회의 토속신앙과 자연 숭배사상 등 쟈바적 요소가 총망라 된 ‘쟈바 전통문화의 모든 것(ke-Jawa-an)’을 포용하는 다양한 색깔의 이슬람이다. 그러나 순다족의 이슬람은 종교적으로 단색(單色)에 가깝다. 이를 바탕으로 쟈바 이슬람은 두 부류로 대별한다. 순수한 이슬람을 신봉하는 산뜨리(Santri)와 끄쟈웬적 요소가 가미된 이슬람을 신봉하는 아방안(Abangan)이다. 이러한 이분법을 대입하자면, 순다족은 거의 다 산트리지만, 쟈바족은 산트리 속에 아방안이 많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현지 학자들은 조심스럽게 아방안이 30퍼센트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서부 자바 주 뿐짝 지역에 사는 노인이 땔감을 운반하고 있다. (사진=데일리인도네시아)
4,000만 순다족의 약 20퍼센트는 도시에 거주하며 80퍼센트는 농촌에 산다. 이들 순다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가족을 매우 중시한다는 것이다. 도시에 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농촌의 경우는 친인척들이 같은 마을에 가까이 모여 사는데, 특히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가 매우 돈독하다. 대부분의 가족은 남편, 아내, 자녀, 또는 결혼 전후에 얻은 양자들로 구성된다. 순다족의 족보 체계는 남편 쪽뿐만 아니라 아내 쪽 친족 관계도 중요시한다. 양계(兩系)사회의 전통 때문이다. 순다족 사회도 친족 관계와 종교생활을 비롯하여 관습법, 결혼과 이혼, 상속과 재산분배 등 사회 전반에서 다양한 변화가 지속되고 있지만, 오늘날까지도 이슬람 종교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이슬람 사회의 정신적인 지도자와 교리를 가르치는 교사와 이슬람 사원의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들이 모두 존경의 대상이다. 이들은 지방정부의 하급관리들 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순다 지역의 농촌 사회에는 아직도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는 무속인이 많고, 이들의 활동 영역 또한 넓고 영향력도 크다.
이슬람 대국 인도네시아에는 종교적으로 열성적이며 헌신적인 종족들이 많다. 수마트라 북단의 아쩨(Aceh)족, 쟈바의 마두라(Madura)족, 술라웨시 남부의 부기스(Bugis)족, 말루꾸(Maluku)군도 북쪽의 떠르나떼(Ternate)와 띠도레(Tidore)족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순다족에 비하면 아주 작은 종족집단일 뿐이다. 4000만에 이르는 순다족이 거의 모두 이슬람을 신봉하고 외래문화를 거부하는 이유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네덜란드 식민통치 350년은 바타비아(Batavia)가 위치한 서부 쟈바 순다지역을 향료군도와 유럽시장의 중간거점으로 활용하였다. 당연하게 현지의 노동력을 착취하였고, 이에 대하여 순다지역의 이슬람 왕국들은 연합하여 외세에 거세게 저항하였다. 서 양문화의 상징인 가톨릭이나 기독교는 철저하게 배척되었다. 네덜란드로서도 순다지역은 인적 · 물적 투자에 비해서 식민지 경략을 뒷받침할 만큼의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였다. 순다족들을 온순하게 개종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바타비아 건설은 값싸고, 말 잘 듣고, 일 잘하는 중국인 노동인력을 대거 동원하였고, 반떤의 후추 무역항에는 동인도회사(VOC)의 군대를 주둔시켰다.
순다족 이슬람의 순수성이 식민통치 세력이라는 외부적 요인으로만 유지되었을까. 쟈바 내부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순다족은 수적 열세 때문에 쟈바족에 정치적으로 복속되거나 경제적으로 예속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순다족은 쟈바족과 부딪치면서 경쟁해야 할 분야는 피하고 상대적으로 독자성을 보존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종족적 정체성과 자긍심 제고에 노력하였다. 이에 해당되는 분야가 학문과 예술분야다. 쟈바어를 능가하는 순다어의 다양성과 언어학적 순수성을 연구하는 유럽학자들이 많다. 이에 앞서 순다족들은 쟈바족의 이슬람과 차별적인 이슬람 순수성 보존에 힘썼을 것이다. 유사한 사례들이 많다. 정치는 말레이족, 경제는 중국인으로 양분된 말레이시아에서 인도인들은 양쪽에 전혀 해가 되지 않는 사회직능분야(의사, 변호사, 계리사, 기술자 등)로 파고들어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