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인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하여, 대인관계의 소통매체로서, 또는 호연지기를 발휘하기 위해 음주기회를 갖는 경우가 잦다. 그런데 음주를 즐기는 정도를 지나, 소위 ‘술이 술을 마시는’ 식의 무절제한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들어 한국의 대기업들이 이곳에 진출하면서 일부 한인식당들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인도네시아 관료, 또는 현지 파트너들을 환대할 목적으로 한국식당으로 이들을 초청하면 예외 없이 한국식 음주문화도 함께 곁들여진다. 상대방의 주량이나 의사에 반해 한국식으로 호기를 부리며 강권하기도 하며 그들 앞에서 주량을 과시하다 절제를 벗어난 추태를 보이기도 한다.
푸짐한 주안상을 내어 놓고 상대방에게 권하는 것은 우리 한국인끼리의 음주문화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인의 문화를 여과 없이 그대로 적용하다 보면 이에 당황하는 현지인들을 만나게 되며, 심지어는 뒷전에서 자기들끼리 방언을 사용하여 비웃는 듯한 이야기들을 엿듣게 된다.
이슬람 율법은 육류, 식음료, 의약품을 섭취하는데 있어 금기시하는 품목을 ‘하람(Haram, 아랍어Haraam)’, 허용되는 품목을 ‘할랄(Halal, 아랍어 ḥalāl)’, 그리고 판단기준이 모호하여 추가 검토가 요구되는 품목을 ‘무바(Mubah)’ 또는‘마끄루(Makruh)’라고 구분하여 이를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하람’으로 분류되는 품목에는 돼지고기와 그 성분이 들어있는 모든 제품, 전통방식에 의해 도축되지 않은 동물, 주류, 마약 및 알코올 성분이 들어있는 최음제, 육식동물, 신성시하는 조류 등이 포함된다.
수년 전 아지노모토사가 생산하는 제품 원료에 ‘하람’ 성분이 들어있다 하여 이슬람계가 들끓어 회사가 한 때 사활의 기로에 선 적이 있었다. 회교세가 강한 아쩨 주, 남부깔리만딴 주 같은 곳에선 벌써 수 십 년 전부터 주정부 조례에 의해 알코올 음료 유통을 금지시켜 왔으며 2007년엔 서부 숨바와 군(Sumbawa Barat)에서도 군청 조례를 제정하여 주류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한편 군도의 동쪽 끝 지역인 파푸아 주 같이 주류거래를 금지하면서도 이들 품목이 반입되는 상거래 행위는 방관하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취하는 지역도 있다. 목재, 석탄거래 등의 목적으로 1970년대부터 한국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남부깔리만딴 주 반자르마신 시내의 식당에 들러 반주라도 한 잔 하려면 주인장이 눈치를 보아가며 아예 물주전자에 담아 나오는 맥주를 스릴 넘치게 맛 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매년 이슬람 라마단 기간이나 성기일을 전후하여 이슬람 과격단체인 이슬람 수호전선(Front Pembela Islam) 대원들이 두건을 두른 채 몽둥이를 휘두르며 유흥업소를 때려부수는 장면을 연례행사처럼 보게 된다. 금년에도 예외 없이 FPI대원들은 반둥 인근 지역에 있는 주류판매점을 습격하여 인도네시아 전통주 뚜악(Tuak)을 압수하는가 하면, 지난 8월에는 남부술라웨시주 마까사르에서 라마단 기간 중 낮 시간에 영업을 하고 있던 한 식당에 몰려가 기물을 파괴하고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현지 지방언론에 의하면 FPI대원들이 과격행위를 하는 동안 경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다. 비슷한 시점에 이슬람 율법이 가장 철저하게 적용되는 아쩨주에선 단식을 실시하지 않는 공무원 3명이 체포되고, 벙꿀루 시장은 민정경찰에게 지시하여 식사를 하던 공무원을 체포해 경고장을 발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초법적인 행위에 대해 관할 경찰서는 공권력 행사는 경찰의 소관사항이므로 FPI의 이러한 행동을 중단하라고 큰소리쳐 보지만 막상 법 집행단계에 이르러서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현실이다.
라마단 기간 중인 지난 8월 초에는 북부자카르타 경찰서가 딴중 쁘리옥과 끌라빠가딩 지역 상점에 대한 특별단속에 나서 다량의 주류와 폭죽을 압수하였다고 발표하는 것은 이슬람 율법을 염두에 둔 제스처에 불과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와 같이 초법적인 행위를 반복하는 FPI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공권력이 잠을 자게 되는 현상에 대해 외국인 커뮤니티는 물론 현지인들도 항상 의문부호를 달아왔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을 주는 신문기사가 최근 등장하였다. 최근 전 세계 외교가를 뒤흔들고 있는 위키리크스(WikiLeaks) 웹사이트가 FPI와 경찰청간의 유착관계를 폭로한 것이다. 일간 자카르타포스트 9월 5일 자를 보면, 현 국정원장인 수딴또(Sutanto)가 2006년 2월 경찰청장 시절 미국대사관 앞에서 난동을 부린 FPI에 자금을 공급하였으며, 전 자카르타 지방경찰청장인 누그로호 자유스만(Nugroho Djayusman)도 FPI를 포함한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고 폭로하였다. 그 이유는 수하르또의 장기 철권정치가 갑자기 붕괴되면서 그 동안 억눌려 왔던 극단 이슬람권의 에너지가 광란으로 이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이들에게 의도적으로 분출구를 열어주었다는 논리이다.
지금 한인사회는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다. 오늘날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기업이나 기업인이라 할지라도 과거에 노사분규나 노사갈등을 겪지 않고 정착한 회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1970년대 초 한인기업 개척기를 ‘제1의 물결’이라 한다면 1990년대 초의 전자산업과 노동집약산업의 진출은 ‘제2의 물결’이 될 것이고 진행형인 지금의 대기업진출 붐은 ‘제3의 물결’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과거 제1, 2의 물결 당시 완충장치를 거치지 못한 문화의 차이가 충격과 충돌로 이어져 결국 많은 부작용을 일으켰지만, 이를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으로 잘 터득하고 있을 지금의 ‘제3의 물결’ 주체들은 그들이 겪게 될 문화의 차이를 충격이나 충돌로 전이시키지 않고 연착륙시킬 수 있는 사전대책을 이미 갖추고 있으리라 믿는다.
글 : 김문환 칼럼니스트
<상기 글은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에서 발행하는 2011년 10월호 '한인뉴스'에 게재된 내용을 필자의 동의를 받아 전재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