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시인과 함께 롬복 시골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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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함께 롬복 시골길을 걷다

기사입력 2015.09.1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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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한인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 모색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시행하는 2015년 재외동포 언론사 기획취재 지원사업과 관련, 본지가 제출한 ‘인도네시아 한인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 모색’이라는 주제가 선정되었습니다. 한국인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50여년 간 수많은 기업이 생겼고 그 중에는 탄탄하게 자리잡은 기업도 있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기업도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경제 발전과 산업구조 변화에 적응하면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는 기업의 노하우를 살펴보고 향후 한인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모색해 보겠습니다. 지난 7월부터 인도네시아 주요 지역을 방문해 현장을 취재한 기사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김주명 시인과 함께 롬복 섬의 시골길을 걷다"
글: 신성철 데일리 인도네시아 대표 

지난 9월 롬복의 쁘라야 신공항에서 자동차로 30여분, 꼬빵(kopang)의 시골 마을에서 김주명 시인을 다시 만났다. 지난 2월 자카르타에서 그의 첫 시집 「인도네시아」 출간회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다. 조금은 검게 그을린 피부며, 시골사람들과 함께 사는 모습이 더 이상 이국적이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나누는 말이 한국말이지 줄곧 화제는 롬복 사람들의 일상으로 빨려들었다.

▲ 김주명 시인(오른쪽)과 롬복 섬 꼬빵 마을 걷다가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데일리인도네시아)

흙이 삶이고 생명이다

“우리는 자연이 순환하다 하죠. 여기 살면서 그 순환하는 과정을 직접 보고 또 느끼고 있습니다. 롬복은 대개 3모작을 합니다. 우기에는 쌀농사를 기본으로 짓고, 건기가 시작 될 무렵 쌀이나 담배를 심죠. 건기가 완연해 지면 주로 옥수수, 콩 등 밭작물을 심으니, 연중 내내 땅이 쉴 겨를이 없어요. 그래도 작물들이 잘 자라는 것을 보면, 정말 축복받은 땅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정말 그랬다. 9월의 중준, 건기가 한참인데도 시인의 마을 꼬빵은 푸르렀다. 멀리 숲의 나무들도, 들판을 점령한 담배 잎들도, 집 앞 나지막한 저수지에서 자라나는 깡꿍(시금치 류의 채소)도 모두 초록을 잃지 않고 건강히 자라나고 있었다. 

“흙에서 자라는 것은 쓸모없는 것이 하나도 없더군요. 저렇게 자라는 깡꿍도 어린 줄기는 잘라서 시장에 팔고, 오래된 것들은 모두 소를 먹이죠. 그리고 모기나 잡벌레도 별로 없어요. 한국에서 온 저의 지인들은 모기 걱정을 많이 하죠. 그런데 막상 와 보고는 깜짝 놀라는 게, 모기가 없다는 사실이죠. 물론 우기에는 모기가 창궐하지만 건기가 되면 감쪽같이 사라진답니다. 모기의 유충이 사는 물이 마르고, 설령 자라더라도 어린 물고기나, 찌짝과 또께 같은 도마뱀들의 먹이가 되니 성충으로 날아오르기까지는 무척 힘이 들겠지요.”

어린 생명이 다른 생명을 먹여 살리는 순환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렇게 풍요로운 땅이 삶의 기반이 되니, 적어도 롬복에서는 밥 걱정 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 여유로움이 상상이나 될까? 

롬복의 특산물은 담배이다. 주로 계약재배 형태로 심어지는데, 전량 수매를 통해 현금화 된다. 알려진 대로 담배는 손일이 특히 많이 가는 작물이다. 그러다 보니, 담배를 수확할 시기에는 주로 품삯을 받으며 일을 하는데, 시골사람들에게는 큰 금액이다. 풍요로움이 실감되는 들판에 우리 일행들만이 들판을 거닐 뿐, 적도의 태양 아래 오후는 잠들어 있었다. 

물을 품은 섬, 롬복

인도네시아의 여느 섬이 그렇듯, 롬복도 화산섬이다. 섬의 중앙에는 린자니산(3,742m)이 원뿔형으로 우뚝 솟아 있다. 산정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스가라 아낙’(작은 바다)이라는 칼데라 호수가 있는데, 백두산의 백록담을 연상케 한다. 그 담수량은 어느 정도일까?

그래서일까? 산 줄기를 따라 연중 내내 물이 흘러넘치니 산에서 3모작이 가능하다. 또 섬의 어느 곳을 파도 우물에는 물이 솟아난다. 이 물은 생활용수로, 농사용으로 모두 쓰이고 있다. 건기가 길어진다고 걱정이 늘지만, 롬복의 사람들은 사뭇 다르다. 건기에는 비가 없어야 풍요롭고 우기에는 비가 있어야 풍요롭다. 말 그대로 자연의 순환방식에 따라 삶을 엮어가고 있는 셈이다.

바다를 끼고 사는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 파도가 심해지는 시기를 그들의 직감으로 알고 배를 전혀 띄우지 않으니, 이런 속내를 모르는 외지인들만 발을 동동 구를 뿐, 그들의 삶의 방식은 아무 문제없는 진행형이다. 

“한국에서는 ‘로컬푸드’라는 개념을 단체급식 시장에 도입한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삶의 반경 인근에서 재배되는 농산물로 식단을 채워간다는 뜻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롬복은 공산품 외에는 거의 모든 부분이 자급자족으로 해결하고 있으니, 로컬푸드의 본고장이라 해도 지나치지는 않겠지요.”

▲ 롬복 섬 꼬빵 마을의 담배 건조장. (사진=데일리인도네시아)

신앙과 민속이 어우러진 삶

롬복의 다수족은 사삭족이다. 당연히 쓰는 언어도 사삭어며, 학교에서도 사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TV보급이 늘어나고 자녀들이 학교에서 인도네시아어를 배우고 쓰기 때문에 자연히 노년층에서도 인도네시아어가 쓰이는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 주된 언어는 사삭어이며, 사삭어로 된 노래, ‘라구 사삭’이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다. 하지만 생활의 전반적인 영역에서는 민간전승의 토속 신앙과 관습이 지배적임을 쉽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집을 짓는다거나, 축대를 쌓는 일, 우물을 파는 일, 배탈이 났거나 작은 외상 등 간단한 민간의술 등에서 그 유형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종교가 규범하지 못하는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는 계승되는 민속을 그대로 이어받아 생활하는 삶의 방식이다. 생활 속 말에도 힌두, 산스크리트어 등에서 기원한 언어들을 쉽게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지역 공동체 의식이 강합니다. 연중 재배되는 먹거리가 비슷하다 보니 음식이나 조리법이 다양하지 못하다고 할까요? 그러나, 결혼이나 초상 등 여러 의식을 통해 음식을 함께 하고 나누는 풍속은 우리나라의 풍속과 다를 바 없죠. 저도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시골에서 살아서 그럴까요? 쓰는 말이 달라서 이곳이 이방의 나라이지, 생활 방식으로 보면 우리네 시골 마을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살고 있답니다.” 

사람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그 삶의 움직임이 ‘자연’ 이라는 큰 수레바퀴 안에서 함께 돌아가고 있다는 걸, 롬복시인의 마을에서 또 느끼게 되었다. 시집 「인도네시아」에 실린 시 한 편으로 김주명 시인의 삶을 덮어 둔다.

▲ 롬복 꼬빵마을 사람들. (사진=데일리인도네시아)


햇살부조浮彫

스무 평도 채 안 되는 작은 집에다
두어 평 테라스를 더 놓았다
부레옥잠 저수지를 경계로 
마호가니와 키도 가끔 재고
별 따라 길나선 동방박사도 쉽게 찾아오게끔
늘 등을 밝힌 어느 밤,
무수한 나방들이 몰려와 제 생을 떨어뜨리고 만다
마치 페루 해변의 바닷새처럼
호주 해안을 들썩거린 고래 떼처럼
축 처진 동공이나 절도 있는 군무는 없었지만
내셔널 지오그래픽
온 힘을 다해 펄럭이다 이내 툭툭!
두어 번 더 뒤척이는 게 끝이다
다음은 닭들의 몫
미명을 알리는 울음도 잊은 채 널브러진
생을 주워 담고서는
다른 주검을 찾아 후드득
남국의 새벽 별자리만 남겨둔 채 날아가 버렸다
나는 간섭하지 않았다
헝클어진 별자리들 따라다니며
지우고 또 지우기
아침 햇살 
순서대로 들어와 털썩
마주 앉도록   

김주명(金主明) 
1968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으며 영남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후 경남은행에 근무하였다. 문화재해설사로 활동하며 우리 문화와 예술에 대해 남다른 시각의 글들을 기고하였다. 대구 詩창작원을 수료, 2010 평사리문학대상(환승입니다)을 수상하였다. 2012년 인도네시아 롬복섬으로 이주하여 ‘롬복 한국문화원’을 열고, 해외 문화교류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형상시문학 동인이다.
시집『인도네시아』책나무출판사2015, 산문집 : 『Lombok이야기』베스트출판사 2013
e- mail : wnaud01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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