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강석희 "한인, 인니 정계 진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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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희 "한인, 인니 정계 진출해야"

기사입력 2015.03.1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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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희 전 어바인(미국 캘리포니아주) 시장 초청 강연 열려

“국가의 정책은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좋은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이곳에 사는 한인들도 인도네시아 정계에 진출해서 한인에게 필요한 정책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캘리포니아 주 어바인 시장직을 수행한 미국 민주당 소속 정치인 강석희(62) 전 시장이 지난 16일 자카르타 코린도그룹 대회의실에서 한인니상공회의소(이하 코참) 주최로 열린 ‘가능성의 힘’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이 같이 말했다.

미국 사회의 강력한 유리천장인 유색인종이라는 벽을 넘어서 제2의 실리콘벨리라 부르는 신생도시 어바인에서 비백인계 최초의 직선시장이 된 강 전 시장은 보통 사람도 누구나 노력만 하면 나처럼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이 16일 자카르타 코린도그룹 대회의실에서 교민들을 대상으로 '가능성의 힘'이라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내년에 미국 상원의원 선거를 준비 중인 강 전 시장은 한국 경제가 성장하려면 해외상공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재인도네시아 한인 상공인들도 정치후원기금을 만들어서 잠재력이 있는 한인들이 인도네시아 정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04년에 어바인 시 지방선거에서 유권자 2만 가구를 걸어서 방문하는 선거운동을 통해 가족처럼 여기게 만들었고, 다양한 현안을 처리하며 신용을 얻어서 2008년과 2010년에 시장에 연속 당선됐다.

2008년은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해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감소하던 시기도 그에게 도움이 됐다.   

그는 2008년 시장에 당선됐을 때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맞았지만 이민 초기 소매업에 종사하며 배워둔 위기관리 능력이 어바인 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1992년 LA 폭동은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정치력 신장의 절실함을 느낀 사건이다. 이후 강 전 시장은 1993년에 한미장학재단을 만들어 2세 정치인 육성을 시작하고, 한미연합회를 만들어서 지역정치가들과 소통 채널을 만들었고, 한미민주당연합회를 만들어서 정치활동 시작했다.

LA 한인사회도 한인 출신 정치인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그의 선거자금과 유세를 지원하는 등 성장을 후원했다.

강 전 시장은 1977년 고려대를 졸업하고 최원희 씨와 결혼한 후 곧바로 미국에 이민,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서킷시티에서 15년간 근무했다.

현지 사회 진출 조건으로 언어 능력을 꼽은, 그는 한국에서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미국에 도착한 직후 말이 전혀 안 통해 당황했다며, 가족을 부양하려면 언어장벽을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어문장을 통째로 외우고 반복해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바인대학교 졸업식에서 9분짜리 연설을 하기 위해 원고를 40회나 고치고 3개월을 연습했다며, 매 순간 주어지는 역할이나 기회를 잡기 위해 할 수 있다(I can do)라는 마음으로 200%의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강 전 시장은 개성 출신으로 서울에서 포목상을 하던 아버지가 자신에게 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용'이라고 가르쳤다며, “정치인은 신용을 파는 사업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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