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김길녀]탈고 안 된 문장의 날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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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녀]탈고 안 된 문장의 날들을 찾아서

기사입력 2015.02.1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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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녀 시인이 만난 인도네시아]

탈고 안 된 문장의 날들을 찾아서

 

-쁠라부안라뚜(Pelabuhanratu)

 

 

아직, 마침표를 찍지 못한 편지.

겨울이 없는 적도에서

온몸에 새겨진 겨울 유전자를 불러내어

써내려간 별 것 아닌 안부.

더러 더러 이렇게

소소한 것에 의미를 주는 일.

생을 칠하는 한 빛깔이다.

그 편지는

지금도,

자작나무 상자 속에서 겨울 적도의

따뜻한 안녕을

써내려 가고 있다.

 

-해신당, 초록공주의 거처에 들다.

 

인니 사람들이 즐겨 찾는 바다 중의 한 곳인 쁠라부안라뚜 해변.

이국인들의 발길이 뜸 하다는 말에 이끌려

무작정 찾아 간 곳.

언제나 그렇듯이 처음 가는 길은 기대감으로 살짝, 흥분 된다.

해변 초입에 도착...

늦은 점심을 먹은 후, 긴 해변을 따라 가다가 발견한 AMAL 마을 한 켠의 작은 동산.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동행한, 독실한 무슬림 신자에게 동산의 정체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사탄의 집' 이 있는 곳...

~놀라움과 함께 아주 짧은 침묵이 흘렀다.

지금이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그곳으로 가고 싶은 속마음을 접어 둔 채...

작은 밀림을 달리고, 미술관 같은 누드 건물의 제비집을 지나고...

마침내 올라간 사탄의 집이 있는 곳은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중간에서 만난, 대문 없는 초록공주의 집.

몇 개의 계단을 오르자, 무슬림 복장의 노인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거실 위치엔, 하얀 타일 무덤 속에 목만 있는 얼굴 조각이 양쪽에 있고

조각엔 하얀 천이 씌워져 있다.

무덤 속에는 형형색색의 생화 꽃잎들이 가득했다.

신비스러움과 놀라움에 오싹함이 느껴져 잠시, 떨렸던 기억이 있다.

조금 후, 무슬림 복장을 한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을 안내하는 곳은 타일무덤 우측의 철문이 있는

또 다른 하얀 무덤이 세 곳이 있는 방이다.

평소엔 큰 자물통으로 잠궈 두어, 창살 틈으로만 내부를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우리와 동행한 무슬림인 지인은

해신당 계단에도 발을 딛지 않았다.

그는 이곳을 방문하는 무슬림들은 사이비이고 심지어, 미친 사람들이라는 말도

서슴없이 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인니, 초대 대통령이 이곳에 와 당선 전 기도를 올렸고...

재임 기간에도 가끔씩 들러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해신당을 지나 마을 끝에 이르자 나타난 절벽 아래로 밀려드는 파도는 유난히 거칠었다.

인니 바다를 떠도는 바다의 여신인 초록공주가 거친 바다의 파도를 타고 이 곳에 와...

이 삼일을 지내고 간다는 그녀의 거처.

그녀의 영적 기운이 깊게 스며있는 이곳에서

소원하는 기도를 올리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전설을 넘어 신화가 되어 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초록공주의 존재는 종교와 시간을 초월하여 인니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해신당은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해신당이 생각나서, 내가 지은 이름이다.

 

- 비밀의 방, 308. 바다 여신의 처소가 있다.

 

무작정 찾아간 바다에서 알게 된 초록공주로 불리는 바다 여신에 대한 궁금증은

또 다시 우리를 그곳으로 가게 하였다.

공항이 없어, 자카르타에서 차로 이동 시간만 4~5시간이 소요 되는 곳.

우리가 알고 있는 해신당이 아닌, 또 다른 곳에 그녀를 위한 공간이 존재 한다고 했다.

오래전 뿌자자란이란 동네에 Munding wengi 란 왕이 있었다.

그에게는 '데위 까디따'란 아주 예쁜 딸이 있었다.

딸에게 왕권을 물려 줄 수 없는 왕은 다시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아들을 낳은 데위 무띠 아라 왕비는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데, 딸인 공주가 방해가 될 듯 하여

공주에게 피부병을 옮겨 흉측한 모습을 만들고, 마침내 공주는 왕의 곁을 떠난다.

공주는 7일을 걸어 사무드라 남쪽 해변에 닿았다.

유난히 맑은 바닷물이 있는 해안에서 어딘가로부터 '바닷속으로 들어가라'는 소리가 들렸다.

공주가 바닷물 속에 들어가자 피부병은 완전히 낫고 공주는 더 예뻐졌다.

그렇게 공주 이야기는 사무드라 해변의 전설이 되었다.

그 후, 이 전설을 믿는 한 사람이 있었고...

그의 말에 의하면 사무드라 호텔 308호 방으로

지금도 데위 까디따공주가 초록옷을 입고 온다고 했다.

이 후, 쁠라부안라뚜 해변에 녹색옷을 입고 오는 사람이 오면, 초록공주가 데려 간다는

소문과 함께 일년에 한 명씩 사람이 없어졌다 한다.

이 때문에 사람과 해변을 지켜 달라는 의미로 308호를

바다 여신의 처소로 모시게 되었다 한다.

해변과 가까운 수까부미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한인이 전해 주는 이야기는 이와 달랐다.

그의 말에 의하면, 호텔이 생긴 후, 실연의 상처를 지닌 한 아가씨가 308호에 머물다가 자살 하자,

밤마다 여자의 울음소리가 호텔에 퍼졌으며...

그러자 호텔측에서 그 방에 그들의 전설 속 초록공주를 모시게 되었고

그 후로 더 이상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했다.

우리는 호텔 5층에 머물다가 돌아오는 날,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308호에 들렀다.

작은 방은 전부 초록으로 꾸며져 있었다.

심지어 꽃잎이 뿌려진 침대와 몇 벌의 드레스까지...

방 중앙에 있는 큰 액자 속의 바다여신은.... 초록 드레스 차림으로 용을 타고

거친 파도를 헤치며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여신의 모습을 한 여자는 우아함과 섹시함을 갖춘 매혹적인 모델이었다.

사진 앞 제단에는 꽃과 향, 음식들이 기도를 위해 놓여 있었다.

마치, 공주가 매일 이곳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듯한 기묘한 풍경이었다.

해신당에서 본 것처럼, 이곳에서도 한 무리의 무슬림들이

여신의 방을 보기 위해 방 문 앞에 대기 중이었다.

 

인니 바다의 어느 곳이든 바다의 여신으로 불리는 초록공주의 존재가 있다고 한다.

18천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바다의 나라답게

바다 여신의 이야기는 이 나라 해변 어느 곳에나 있다.

이곳 해변이 초록공주의 전설이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시작되는 곳...

호텔과 해신당은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서로 다른 모습의 공간으로 사람들을 부르고 있었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신을 찾게 되는 건 보이지 않는 존재인 신.

그가, 그곳에 있다는 환상이 만들어 낸 공간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영혼도 순수하다고 생각 되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나의 신을 향한 이 저녁의 기도는

나만이 만든 내 신전 앞에서 나를 부르고 있다.

모든 이들에게 바다 여신인 초록공주의 따스한 사랑이, 밤바다 달빛의 윤슬로 스며들길...




해신당과 호텔 308호에서 만나는 바다여신,초록공주의 모습.


AMAL 마을을 지나서 만난,훔쳐 오고 싶었던 풍경.



독특한 건물의 제비호텔이 해변 끝자락에 있다.

해신당이 있는 동산의 마을.


인니어가 풍성한 당신에게 해독을 부탁하고 싶은 저~ 글자들.


깊은 생각에 잠긴,인니 여자와 남자.


생화 꽃잎들을 팔고 있는 해신당 입구의 가게.


이쁜 초록공주가 올 것 같은,검은 모래 해변.



 

뜻밖의 소풍

 

사전을 끌어안고 쓸데없는 이야기나 줄줄이 적거나

기억하는 일 말고도 무슨 죄를 더 지을 것인가,

고민하며

감옥에 갇히길 꿈꾸던 이병률 시인처럼

말랑말랑 달콤한

감옥에 수감된지 사흘 모자라는 한 달

 

구름과 바람만이 드나드는 자카르타 술탄 29

몸과 마음이 헐거워진 나는

뒤늦게 온 책 속에 묻혀

매일매일 일기 쓰고

닳아가던 설레임에 비를 뿌리고

안으로 안으로 뼈의 길 만지며

산책에 열중한다

 

초록에 지친 이국 공원 너머로

한낮의 소란 남겨둔 채 사라지는

적도 근처 석양만이 여행자를 잠재운다

 

더 이상 지을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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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녀

 김길녀 시인은 강원도 삼척 출생으로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1990년 <시와비평>으로 등단. 시집으로 <푸른 징조>, <키 작은 나무의 변명>등이 있다. 제13회 한국해양문학상(시)을 수상했다. 문학잡지를 만들며 에디터와 문화기획자로, 라디오방송 등등의 일로 한 시절을 보냈다. 긴 휴가를 받아 여행자로 인니의 자카르타에서 살기도 했다. 고요와 음악과 커피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기꺼이 즐기며 지낸다. 우두커니 있는 걸 좋아한다. 느낌이 좋으면 살짝, 미치는 성향이 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에 깊이 빠져서, 그때의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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