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詩鏡 - 시가 있는 목요일
안녕하세요. 박정자입니다.
영혼을 태워 그림을 그렸던 빈센트 반 고흐, 그가 동생 태오에게 보낸 편지는 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열정과 용기에 대해 참으로 많은 말을 들려줍니다.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그 그림에 감탄하고 좋다고 인정하는 것이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일이다...’
그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시 또한 그렇지요. 문맥이나 의미를 따져 볼 겨를 없이 눈에서 가슴으로, 한순간! 감동이 되는 시... 정두리 시인의 <그대>입니다.
그 대 / 정두리
우리는 누구입니까
빈 언덕의 자운영꽃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반짝이는 조약돌
이름을 얻지 못할 구석진 마을의 투명한 시냇물
일제히 흰 띠를 두르고 스스로 다가오는 첫눈입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늘 앞질러 사랑케 하실 힘
덜어내고도 몇 배로 다시 고이는 힘
아! 한목에 그대를 다 품을 수 있는 씨앗으로 남고 싶습니다
허물없이 맨발이 넉넉한 저녁입니다
뜨거운 목젖까지 알아내고도 코끝으로 까지
발이 저린 우리는 나무입니다
우리는 어떤 노래입니까
이노리나무 정수리에 낭낭 걸린 노래 한 소절
아름다운 세상을 눈물 나게 하는
눈물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그대와 나는 두고 두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네게로 이르는 길
네가 깨끗한 얼굴로 내게로 되돌아오는 길
그대와 나는 내리 내리 사랑하는 일만
남겨두어야 합니다.